영화 '루시' 속 최민식에게는 1500만 관객을 감동시킨 성웅 이순신의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보는 이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절대 악' 마이클 장만 있을 뿐이 었다.
20일 서울 용산CGV에서는 최민식의 첫 헐리우드 진출작 '루시'(9월 4일 개봉·뤽 베송 감독)의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루시'는 마약 운반책으로 이용당하던 여성 루시(스칼렛 요한슨)가 정체 모를 약물을 투여 받고 특별한 초능력을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액션 영화. 최민식은 스칼렛 요한슨을 이용하고 끝없이 추격하는 범죄 조직의 보스 미스터 장을 연기했다.
최민식은 첫 등장부터 압도적이다. 수트를 차려입고 고글을 쓴 채 얼굴에 피 범벅이 돼 천천히 걸어나오는 그는 한국 영화 상 가장 인상적인 등장이라고 꼽히는 '관상' 속 이정재(수양대군) 못지 않게 강렬하다. 이내 지루한 표정으로 손에 범벅이 된 피를 생수로 씻어내는 모습은 등골마저 서늘하게 한다. 스칼렛 요한슨과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인상적이다. 최민식은 고함을 지르지도, 인상을 쓰지도 않으면서 엄청난 긴장감을 유발한다. 겁에 질려 목숨을 구걸하는 스칼렛 요한슨을 마치 물건 보듯 쳐다보는 눈빛은 백마디 대사보다도 극악무도한 마이클 장의 캐릭터를 잘 설명해준다. 영화 말미 건물 안에서 양손에 총을 쥐고 무차별적으로 총알을 난사하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한국 영화에서는 쉽게 다룰 수 없는 총기 액션이지만 능숙한 솜씨로 소화했다. "영화 출연 제의를 거절하면 죽이려고 했었다"라는 말까지 했을 만큼 최민식을 캐스팅하기 위해 정성을 쏟았던 뤽 베송의 선택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스칼렛 요한슨, 모건 프리먼 등 세계적인 배우들 사이에서도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줬던 그는 시사회 이후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연기가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이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 고뇌하는 자세에서 '대배우'의 면모가 느껴졌다. 또한 그는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을 향하는 와중에 함께한 한국 스태프를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기자간담회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서둘러 마이크를 잡은 그는 "'루시' 촬영을 함께한 한국 배우들과 한국 무술 감독이 있다. '명량'에서 조선 승병으로 나왔던 신창수라는 친구와 서정주라는 친구다. 배우와 무술 감독을 겸하고 있는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 덕분에 영화 촬영을 잘 할 수 있었다"며 공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