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선수들이 하나둘씩 그라운드에 나섰다. 모자를 벗자 헤어 스타일이 모두 짧고 단정하게 정리돼 있었다. 일명 스포츠 머리. 최하위로 처진 팀 성적과 함께 벤치 클리어링 사태로 인한 팀 분위기를 새롭게 다지자는 의미였다.
그러나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LG는 22일 대구 삼성전에서 선발 리오단의 6이닝 7실점 부진 속에 1-8로 졌다. 최근 3연패에 시즌 4승1무12패로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날 경기 전 LG 선수들은 최대한 침묵했다. 이전처럼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거나 웃는 선수들의 모습조차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몇몇 선수들은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을 꺼렸고, 주장 이진영은 "말을 아끼고, 경기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LG 신인 투수 임지섭은 "오전에 식사하러 갔는데 많은 선배들이 머리카락을 잘랐더라"고 삭발 동참 이유를 설명했다. LG 구단 관계자는 "선배 선수들이 21일 대구에 도착한 뒤 먼저 삭발했고, 오늘(22일) 오전 후배들이 이를 따라 하나둘씩 각자 헤어 스타일을 정리했다"고 전했다.
LG 선수들이 삭발을 한 건 근 2년 만이다. 2012년 6월28일 잠실 KIA전에 앞서 단체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나왔다. 당시 주장 이병규(등번호 9)가 주도하고 정성훈 등 고참들이 앞장서 경기 직전까지 라커룸에서 차례로 삭발행렬에 동참했다. 전날까지 5연패에 빠지며 팀 순위가 6위까지 처진 상황이었다. 이튿날(29일)인 문학 SK전에서는 경기가 우천 취소되자 김기태 LG 감독이 오지환에게 "노래 한 번 해봐"라고 했고, 이른바 '더그아웃 노래자랑'이 열렸다.
올해는 팀 성적과 함께 최근 벤치 클리어링 사태까지 포함된 것으로 해석된다. 시즌 초반 최하위로 떨어진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일 대전 한화전에선 벤치 클리어링 사태로 비난의 표적이 됐다. 한화 정근우에게 빈볼을 던진 LG 투수 정찬헌은 벌금 200만원과 5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결국 이번 삭발은 선수단 전체가 하나로 힘을 모아 위기 상황을 뚫고 나가자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LG는 지난해 5월26일 잠실 SK전 뒤 임찬규(현 경찰)가 아나운서에게 물바가지를 퍼부은 사건으로 여론의 화살을 맞았지만 그 뒤 20경기에서 16승4패의 상승세를 타며 6위에서 2위로 도약했다.
김기태 LG 감독은 이날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의 삭발은) 그 마음을 받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팀 성적이) 더 내려갈 곳도 없다. 이럴 때일수록 말을 아끼고 최대한 침묵해야 한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며 그라운드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