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준호(포항 스틸러스)는 잊힌 이름이었다. 그는 지난해 4월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회복까지 1년을 진단받았다. 하필 포항의 '차세대 엔진'으로 한창 기대를 모으던 시점. 지루한 재활 끝에 올해 다시 그라운드에 섰지만, 손준호를 바라보는 시선은 물음표투성이였다. 최근 실전 경험이 전무한 탓이다. 예전 기량을 쉽게 보이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그래서 나왔다.
그런 그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패스의 달인'으로 우뚝 섰다. 올 시즌 총 14개의 도움을 쌓아 올린 손준호는 지난 20일 2017 KEB하나은행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최다 도움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장에서 만난 손준호는 "지난해 큰 아픔이 있었기에 이 자리가 더 뜻깊다. 프로 생활 중 최고의 시즌"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부상을 겪을 때는 무척 힘들었고 이런 상황을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포기하지 않고 온 보상을 받는 것 같다. 골을 넣어 준 우리팀 공격수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짜릿한 막판 뒤집기다. 도움왕 경쟁은 올 시즌 클래식 타이틀 중 마지막까지 가장 다툼이 치열했던 부문이다. 윤일록(FC 서울)과 염기훈(수원 삼성)이 줄곧 도움왕 레이스를 주도했다. 시즌 초반부터 선두 싸움을 벌이기 시작한 이들은 중반까지 이파전을 이어 왔다. 손준호는 정규 리그 33라운드까지 9도움을 기록하며 윤일록(11도움), 염기훈(10도움)에 이어 3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후반부 경쟁에 뛰어들었다. 손준호는 남은 5경기에서 5개의 도움을 몰아치며 1개의 도움만 추가한 윤일록(12도움)을 제치는 대역전극을 펼쳤다. 리그 최종전이 가장 떨렸다고 했다. 손준호가 14도움으로 시즌을 하루 먼저 마친 가운데 19일 FC 서울과 제주 유나이티드의 경기에서 윤일록이 도움을 추가하면 눈앞에서 타이틀을 놓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윤일록이 제주전에서 도움을 더하지 못하면서 결국 도움왕을 확정했다. 손준호는 이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고 털어놨다. 손준호는 "사실 손에 땀까지 났다. 그렇게 축구를 본 건 처음이었다"면서 "긴장을 많이 했다"며 웃었다.
그는 이번 수상으로 2년 전에 상을 놓친 아쉬움을 털어 냈다. 2014년 포항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입문한 손준호는 선배인 이명주와 김승대처럼 포항제철고-영남대를 거치며 포항 유스팀 과정을 착실하게 밟아 온 엘리트다. 키(178㎝)는 큰 편이 아니지만 개인기와 패스 능력이 뛰어나 영남대 시절엔 1학년 때부터 주전 미드필더를 꿰찼다. 2015년 9골 4도움을 올리며 포항 '스틸타카(스틸러스+티키타카)'를 이끄는 키 플레이어로 활약했지만, K리그 황금세대라고 불리는 이재성(전북 현대) 권창훈(디종) 황의조(세레소 오사카) 3인방에게 밀려 영플레이어상(신인상) 후보에도 들지 못했다.
첫 개인 타이틀을 거머쥐었음에도 손준호는 한 시즌 포지션별 최고의 선수를 뽑는 베스트11의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미드필더 부문에 워낙 쟁쟁한 후보가 많기는 했지만, 서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손준호는 "내가 시즌 중 각 라운드 베스트11에 든 횟수가 적더라. 기록이 말해 주는 것 아니겠냐"며 "부족해서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이니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팀이 하위 스플릿으로 간 영향도 있었을 것"이라면서 "기대에 미치지 못해 팬들에게 죄송하고, 내년에는 팀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 나가도록 돕고 싶다"고 덧붙였다.
팀이 2년 연속으로 하위 스플릿에 머물며 명가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터. 내년은 손준호 개인으로나 팀으로나 중요한 해다. 손준호는 "내년에는 타이틀을 지킨다는 목표로, 다시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매 경기에 임하며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어 팀에 대해선 "무엇보다 투자가 이뤄져야 할 것 같다"면서 "팀원들이 하나로 뭉쳐 예전의 끈끈한 포항의 모습을 보이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