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 착각이다. 다음 달 8일 일본에서 개최되는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한국 대표팀은 '도전자'다.
신태용 대표팀 감독은 21일 E-1 챔피언십에 나설 24명의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섰다.
한국은 이 대회 최강자였다. 2003년 시작된 뒤 3회 우승으로 최다 우승팀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이 2회, 일본이 1회 우승을 차지했다. 이전 대회였던 2015 대회 챔피언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는 동아시아 최강팀이 맞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이번 대회에서 상대할 일본과 중국에 도전해 경쟁력을 입증해야 할 처지다.
2015년 우승한 뒤 한국, 일본, 중국은 변화를 겪었다. 한국은 바닥까지 추락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무기력함으로 일관했다. 울리 슈틸리케(63) 감독이 경질됐다. 한국은 가까스로 A조 2위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일본은 아시아 강호의 위용을 유지했다. 치열했던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B조에서 1위로 통과했다. 일본과 상대 전적에서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역대 전적에서는 77전 40승23무14패로 한국이 압도하고 있지만 최근 전적에서는 2010년 5월 박지성(36)과 박주영(32·FC 서울)의 연속골로 2-0으로 승리한 뒤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5경기에서 2무3패를 기록했다.
중국은 꾸준히 발전했다. '축구 굴기' 정책으로 슈퍼리그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고, 그 효과는 대표팀에도 영향을 미쳤다. 월드컵 본선행은 실패했지만 최종예선에서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등 강호들을 무너뜨리는 저력을 연출했다. 중국은 '공한증 종말'을 선언했다. 지난 3월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6차전에서 중국은 한국을 1-0으로 이겼다. 유럽파까지 총동원된 최정예 한국을 무너뜨린 첫 경기였다.
세 팀의 현재 상황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적나라하게 말해 주고 있다. 한국은 62위다. 일본은 44위. 57위 중국은 FIFA 랭킹 도입 이후 최초로 한국보다 높은 자리에 위치했다.
한국이 위에 서서 일본과 중국을 밑으로 내려 볼 수 없다. 그들보다 한 수 위라는 자만은 버려야 한다. 일본과 중국은 반드시 설욕해야 할 대상이다.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무너뜨려야 할 적이다.
11월 A매치에서 콜롬비아-세르비아로 이어지는 강호들과 평가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고 여유를 부린다면 비난의 중심에 섰던 시기로 돌아가는 지름길이 열리게 된다. 오히려 더 큰 위기에 놓일 수도 있다. 일본과 중국에 패배한다면 더 큰 후폭풍이 불어닥칠 것이 자명하다.
신 감독 역시 도전자다. 그가 상대할 수장들이 만만치 않다. 신 감독이 쉽게 넘을 수 있는 감독은 없다. 일본은 바히드 할리호지치(65) 감독이 이끌고 있다. 그는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 릴 등 프랑스 명문팀 감독을 역임했다. 그리고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알제리 대표팀을 지도하면서 한국을 2-4로 완파한 감독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하다. 16강전에서 우승팀 독일을 괴롭히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15년 3월 일본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일본을 지도하면서 각종 논란에 휩싸였으면서도 일본을 A조 1위로 러시아월드컵 본선으로 이끌어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마르첼로 리피(69) 중국 대표팀 감독은 많은 설명이 필요 없다. 지략의 황제, 세계 최고의 명장 중 하나로 꼽힌다.
세계 축구사에서 FIFA 월드컵,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그리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모두 들어 올린 유일한 감독이다.
리피 감독은 지난해 10월 위기의 중국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리피 감독의 손길이 닿자 중국 대표팀은 변했다. 감독 부임 뒤 중국은 최종예선 6경기에서 3승2무1패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1패는 A조 최강 이란에 당한 패배다. 한국 역시 리피의 마법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두 명장 앞에서 부릴 여유는 없다. 배울 점은 배우고, 그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전술과 지략 연구에 몰두해야 한다. 아시아의 두 감독을 넘지 못한다면 세계적 명장들이 즐비한 월드컵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신 감독은 "우승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월드컵 본선까지 보고 있다"며 우승만을 바라봤다. 한일전에 대해서도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잘못되면 큰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이길 수 있도록 멋진 경기를 준비하겠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