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19일 만에 700만 관객을 돌파한 할리우드 대작 '인터스텔라'를 비롯해 '아빠를 빌려드립니다'(김덕수 감독)와 '나의 독재자'(이해준 감독) 등 국내외 작품을 가리지 않고 공통적으로 다루는 소재가 바로 '아버지'다. 이 흐름은 12월 충무로 최대 기대작 '국제시장'까지 이어진다.
5년 공백을 깬 윤제균 감독의 연출 복귀작 '국제시장'은 부성애를 전면에 내세운다. 19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격변의 시대를 주인공 황정민(덕수)의 인생으로 생생하게 그려냈다.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아버지 세대를 재조명하며 '과연 우리가 아버지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윤 감독은 지난 24일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아버님이 대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이 영화를 만든 계기가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며 "돌아가셨을 때 감사하다는 말을 못해 영화로나마 말을 드리고 싶어서 (이 작품을) 하게 됐다"고 애틋함을 전했다.
11월 극장가를 강타한 '인터스텔라'도 마찬가지다. 상대성 이론과 웜홀, 양자역학 등 다소 난해할 수 있는 과학 이론이 주를 이루지만 가장 큰 감정의 물줄기는 부성애다. 주인공 메튜 맥커너히(쿠퍼)가 종말을 눈앞에 둔 지구를 대체할 행성을 찾아 광활한 우주로 떠나는 이유는 자신의 어린 아들과 딸의 미래를 위해서다. 영화 중반에 나오는 아버지와 딸의 화상연결 장면은 보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강익모 영화평론가는 "희망이 없는 지구에서 단 하나의 희망을 찾아 나서는 존재가 아버지라는 점이 SF영화에 대한 거부감을 덜어줬다. 유독 부성애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한국 관객에게 잘 녹아들었다"고 말했다.
이밖에 '인터스텔라' '퓨리' '헝거게임: 모킹제이' 등 쟁쟁한 할리우드 대작들 사이에서 일일 박스오피스 5위를 유지 중인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역시 '아빠 렌탈 사업'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유쾌하면서도 잔잔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망가짐을 두려워 하지 않은 김상경과 생활 연기의 달인 문정희가 보여주는 부부 호흡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우려할 부분도 작지 않다. 부성애와 아버지라는 소재가 자칫 진부해 보일 수 있다. 양날의 칼. 하반기 기대작으로 손꼽혔던 '나의 독재자'(누적관객 38만 명)가 고전한 것도 이와 맥을 함께 한다. 연기파 배우 설경구와 박해일이 호흡을 맞춘 '나의 독재자'는 첫 남북 정상 회담을 앞둔 1970년대, 회담의 리허설을 위한 독재자 김일성의 대역으로 선택된 무명 연극배우(설경구)와 아들(박해일)의 이야기를 그린다. 관심을 한 몸에 받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감동'보다는 '진부함'에 무게의 추가 기울었다.
한 영화 관계자는 "아버지라는 소재는 다루기에 따라 상반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언뜻 보면 쉬워보이지만 자칫 잘못 했다가는 만만치 않은 역풍을 만날 수 있는 예민한 소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