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우리나라는 강연 열풍이 불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를 두고 멘토가 필요하다고 느낀 이들이 많아져서 그랬는지 암튼 여기저기 강연을 유치하느라 분주하다. 그 가운데 가장 뜨거운 반응으로 많은 이들에게 색다른 주제를 던진 이가 있었는데 그는 파마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까랑까랑한 목소리에 푸근하고 장난꾸러기 아이와 같은 귀여운 얼굴의 김정운 교수다. 혹시 이름을 듣고 잘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전에 SBS '힐링캠프'에 나왔고, 요즘 야쿠르트 광고에 등장하는 그 인물하면 어지간한 사람은 '아~' 하고 안다.
갑자기 김정운 교수가 보고 싶어 일본하고도 무려 교토에 다녀왔다. 막 친한 사이도 아니다. 무려 5년 만에 만났으니. 그나마 카톡이나 가끔 주고받는 사이랄까.ㅎㅎ 암튼 갑작스런 내 방문에도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그는 일본에 건너 온지 벌써 2년 가까이 되었으며 중간 중간 한국에 나와 강연을 하고 금방 다시 교토로 건너오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도대체 왜 일본에 왔을까 궁금했다. 지금 현재 제일 잘 나가는 강사다. 강연료도 최상급으로 비싸다. 그의 강연은 재미와 정보 둘 다 만족하기로 유명하다. 근데 왜 돈 방석을 뒤로 하고 훌쩍 떠났을까. 혹시 아내와의 관계가 안 좋은 것은 아닐까 싶어 물으니 그것도 아니다.
교수들은 6년 일하고 7년 째 안식년을 갖는 이들이 많다. 근데 이 양반은 교수직도 던지고 교토의 번화가 밖에 있는 어느 미술대학에서 학생으로 등록하고 공부를 하고 있다. 원래 미술을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림은 고교 이후 배워 본 적도 없다. 과거 도쿄에서 1년간 머물렀던 경험은 있으나 일본어를 못한다. 그러니 학교에서 받아줄리 없다. 무작정 학교를 찾아가 ‘날 받아라!’를 외치는 그에게 난색을 표하는 교무과 직원. 지나가던 부총장이 무슨 일이냐 묻고, 김 교수는 영어로 ‘난 어떤 사람이고 만화를 배우고 싶다’를 설명한다. 그 후 자기에게 일본화를 기본으로 배워보라 권해서 시작하게 되었단다.
참 엉뚱하다. 처음부터 화가가 되겠다고 떠난 일본행도 아니었다. 학교 근처에 집을 얻고 무작정 그림 공부에 매달린다. 아침 8시면 일본어 학원으로 향한다. 옆에서 보니 일본어를 읽기는 잘한다. 근데 말하는 것은 유치원생도 안 되는 것 같다. 근데 그는 그 사이 일본책을 한권 번역한다. 그림 실력은 더 놀랍다. 학교 전시회에 가보니 ‘변태 1·2’ 라는 작품 두 개가 떡하니 벽에 붙어 있다. 더욱 헐~스러운 것은 유력 일간지에 칼럼과 더불어 초짜 그림을 떡하니 올린다.
주변에 한국인과의 교류도 거의 없다. 집은 근방 2km내에 마땅히 맛 집 하나 없는 한적한 주택가다. 그는 더 부유하고 넉넉할 앞에 놓인 물질적 기회를 두고 300엔 짜리 교내 식당 밥을 먹으며 과거 고독한 독일 유학 시절로 자신을 던지고 있었다. 자신이 그동안 강연에서 외치던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 갖기, 틀을 스스로 깨라, 한 걸음 떨어져서 자신을 바라봐라, 나이가 들어 갈수록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라, 노는 만큼 성공 한다, 안하고 후회하지 말고 하고나서 후회라라’를 실천하고 있을 뿐이었다.
중년의 남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떠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어쩌면 꿈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유학 까지는 아니라도 나는 반복되는 삶 속에서 자기만의 시간 투자를 통해 또 다른 나를 깨우는 노력은 하고 있을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멀쩡히 하던 일을 그만두고 다른 것을 배운다? 평소 가족에게 준 신뢰도 있어야 하겠고, 적어도 1년 반 동안 수입 없이 먹고 살아야 할 자금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신뢰를 자져야 가능하다.
김정운 교수를 만나고 오는 비행기 안에서 든 생각. 어쩌면 이 시대 수많은 ‘인생 힘내세요’ 강연은 듣는 이가 처음 듣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누구나의 마음속에 대기하고 있는 또 한명의 자신에게 출동 준비를 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