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필요없다 우리교재는 게임"
일간스포츠

입력 2006.01.12 01:16

숭실고교 1학년 '집짓기 가정실습 '심즈'로
'나만의 러브하우스'에 내신도 반영

“선생님~ 화장실 두 개째 지었어요.”

“얘는 참, 화장실에 창문은 왜 안 만드니, 냄새가 안 빠지잖아.”

“선생님~ 제가 만든 방 좀 봐주세요.”

“온통 비싼 벽지로 발라 놨네. 럭셔리 하우스다, 럭셔리~”

지난 8일 오후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 있는 숭실고등학교의 컴퓨터실, 1학년 2반의 가정 과목 ‘아름다운 우리집 꾸미기’의 실습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학생들 어깨 너머로 보이는 모니터 속 화면이 뜻밖이다. 바로 PC게임 <심즈> 였다.

게임과 학교 수업의 만남이 이어지고 있다. 중앙대학교 위정현 교수는 이번 학기 상경학부 ‘컨텐츠 비즈니스전략론’ 강의 시간에 온라인 RPG <거상> 을 교재로 쓰고 있다. 세계 최초의 시도. 그런데 입시전쟁을 치러야 하는 고등학교에서, 그것도 500명 1학년 전체가 내신에 반영되는 실습을 게임으로 한다. 역시 세계 최초다.

106년의 전통의 숭실 고등학교에서 게임을 사용한 ‘특별한 수업’을 하게 된 사연은?

▲ 내신에도 반영되는 ‘진지한’ 게임 실습

숭실고등학교 가정담당 이희진 교사(25)는 능숙한 솜씨로 시뮬레이션 게임 <심즈> 의 조작법을 설명하며 쏟아지는 학생들의 질문에 척척 대답해 주었다. 이 교사가 국내 최초로 시도한 게임 수업에 대한 반응은 어땠을까?

장래희망이 교사라는 임욱현 군은 “게임으로 수업하니까 새롭고 무엇보다 재미있어서 집중이 잘 돼요. 나중에 선생님이 되면 저도 이렇게 할래요”라고 말했다. 손동현 군도 “보통 칠판에 쓰는 딱딱한 수업만 하다가 게임으로 하니까 더 흥미가 생기고 좋아요”라고 소감을 말했다.

이번 실습에는 기술과 가정을 합친 기말고사 100점에서 10점이 배정됐다. 학생들은 자신이 <심즈> 에서 지은 집의 화면을 찍고 설계과정과 디자인 의도를 함께 제출했다. 이 교사는 “교과서에 나온 이론을 토대로 계획을 미리 짜오도록 해서 결과물뿐만 아니라, 의도와 과정을 점수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원래 ‘우리집 꾸미기’ 단원의 실습은 스티로폼으로 만든 집 모형을 놓고 설명하는 것이 전부였다. “ <심즈> 는 땅 고르는 것부터 집의 설계와 가구의 배치까지 가능해 우리집 꾸미기에 딱 맞는 실습 교재다.” 이 교사가 게임을 택한 이유다.

▲ 무기력한 눈빛은 싫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이 교사가 <심즈> 를 처음 접한 것은 3년 전인 2000년 초. 게임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평소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 집 짓기가 가능한 <심즈> 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원본 <심즈> 이후 출시된 확장팩 7개를 모두 샀을 정도. 그리고 지난 해 숭실고에 부임해 첫 교편을 잡게 되면서 “가정수업에 <심즈> 를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직에 몸담은 첫해라 망설이다가 결국 포기했다. 그러다 올해는 주변 선생님들이 권유로 용기를 냈다.” 이 교사는 지난 10월 학교에 실습 허락을 받고 <심즈> 의 국내 유통사인 EA코리아에 협조를 요청했다. EA코리아도 좋은 의도를 받아들여 <심즈> 정품 35개를 제공, 숭실고 컴퓨터실을 ‘ <심즈> 교실’로 바꾸는데 일조했다.

사실 <심즈> 수업을 진행하기까지 이 교사의 남모를 고생이 있었다. 컴퓨터실 PC에 <심즈> 를 설치하고 부족한 인테리어 아이템을 인터넷에서 찾아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지 일일이 검사했다. 40여대의 PC마다 100개가 넘는 아이템과 게임을 설치하는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아이들이 교실에서 무기력하게 칠판만 바라보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게임으로 실습을 진행할 때 반짝반짝 빛나던 학생들의 눈빛이 가장 반가웠다.”

▲ 교과서보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체험’

“솔직히 교과서가 재미있진 않다.” 이 교사는 “교과서보다 아이들이 직접 체험하는 수업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심즈> 이전에도 ‘역할연극’이나 ‘OX퀴즈 대회’ ‘쿠션 만들기’ ‘조리실습’ 등 다양한 현장수업을 진행했다. 특히 ‘초대음식 만들기’가 주제였던 조리실습에는 한 학생이 보신탕 재료를 준비해 와 학교 전체에 냄새가 퍼지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남자 교사들에게는 인기 ‘짱’ 이었다고.

현재 학생들에게 <심즈> 로 하는 가정실습의 반응은 무척 좋은 편이다. 그래서 이 교사는 “내년에는 교과서를 보면서 하는 <심즈> ‘오픈 북’ 실습으로 가정에 할당된 내신 50점을 모두 주고 싶다”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

만약에 게임이 부모의 양육태도에 따라 아이의 성격이 변하는 부분까지 담고 있었다면 ‘임신과 출산, 육아’ 단원의 실습 교재로도 사용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심즈> 에서는 지원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대하는 것이 부모의 DNA와 성격까지 물려받는 후속편.

EA코리아 마케팅팀 갈민경 과장은 “내년 봄 출시될 <심즈 2> 는 세대를 뛰어넘는 인생사를 담고 있어 다양한 수업에서 활용할 수 있다”며 “창의적인 발상으로 수업을 이끌어 가는 이희진 선생님과 학생들을 위해 출시되는 대로 무상 제공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이 교사의 새로운 시도는 지난 8일 수업을 통해 첫 걸음을 떼었다. 앞으로 학부모나 일부 학생의 반발에 부딪힐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순히 ‘게임이기 때문에’라는 선입관은 곤란하다. 중요한 것은 ‘효과적인 현장교육’이기 때문이다. “다른 학교에서도 원한다면 <심즈> 의 가정실습 노하우를 알려주고 싶다”는 이 교사의 노력이 좋은 결실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이재진 기자



<심즈> 는 어떤 게임?

<심즈> 는 지난 2000년 1월 31일 출시된 이래 전세계적으로 1000만장 이상이 판매된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의 대표작이다. 가장 기본적인 집 짓기와 꾸미기부터 직장과 사교 등 일상생활 그대로를 재현해 여성 유저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 국내에서는 원본(10만장)과 7개의 확장팩(각각 1만장 이상)으로 총 20만장이 넘게 판매됐으며 PS2와 X박스용 <심즈> 도 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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