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 임요환, 나를 찾아 REPLAY
일간스포츠

입력 2006.01.12 15:28

거울 앞에 선나… 내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래! 나를 찾아 REPLAY
특유의 '복서 스타일' 빛 바래며
'지존' 이미지 퇴색…사랑의 열병도
'2001년 욱일승천

"초보 게이머 임요환의 2004년, 지켜봐 주세요."

프로게이머 임요환(24.SK텔레콤 T1)을 만났다. 최근 SK텔레콤 T1에 입단한 뒤 한층 바빠진 그의 스케쥴을 빼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온게임넷과 MBC게임의 마이너급 리그 첫 경기가 있는 이번주는 2004년 성적의 기초공사를 하는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었다. 요즘 그는 경기석에서 힘겨워 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그래서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애초에 '우승하겠다' '열심히 하겠다'는 멘트를 바란 인터뷰가 아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테란의 황제'와 '2억 원 연봉'이라는 부담스러운 수식어부터 떼어냈다. 대화가 술술 이어지면서 애절한 사랑 이야기까지 나왔다.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 결국 더 심하게 괴롭힌 인터뷰가 돼 버렸다. 그가 잃어버린 것, 2004년에 다시 찾고 싶은 것들. 스물네 살의 청년 임요환의 이야기다.

글=이재진 기자
사진=김민규 기자


▲ 다시찾기 #1. 자신감

요즘 그의 경기는 예전만큼 박진감 넘치지 않는다. 옛날 그의 경기는 지는 게임조차 명승부로 꼽힐 정도로 재미있었다. "자꾸 지니까 한 번이라도 이겨서 자신감을 찾고 싶었죠." 임요환은 이길수록 강해지는 선수다. 그래서 그에겐 승리의 경험 한 번이 절실했다.

자신감이 없다 보니 과감함도 사라졌다. 관객들의 비명을 자아내는 특유의 '깜짝 전략'이나 '보여주기 컨트롤'도 함께 실종됐다. 자연히 경기 보는 재미가 예전만 못하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감각이 좋을 땐 손이 절로 움직이고 머릿속에선 전략이 딱딱 생각이 났는데 지금은 그게 잘 안 돼요." 무엇이 문제일까? 일단 떨어진 체력 보강에 나섰다. 하루 10시간 이상씩 모니터 앞에 앉아 훈련해야 하는 프로게이머에게 체력은 매우 중요하다. 10~12시간씩 자던 잠을 8시간으로 줄였고 대신 매일 1시간이 넘게 운동에 매달리고 있다.

체력을 다진 다음에 찾아야 할 것. 바로 임요환표 자신감의 원천인 '복서(Boxer) 스타일'이었다.


▲ 다시찾기 #2. 복서 스타일

2001, 2002년의 임요환은 '절대극강'의 이미지 그 자체였다. 특히 저그(Zerg)전은 최강이었다. 일류 저그들이 결승전에서 그를 만나면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하지만 지난 온게임넷 듀얼토너먼트에서, 온게임넷 스타리그 16강전에서 임요환을 '탈락'이라는 나락으로 떨어뜨린 종족은 다름아닌 저그였다.

"계속 테란전과 프로토스전만 하다 보니까 바이오닉(생체유닛을 주력으로 쓰는 게임)이 너무 약해졌어요." 하지만 팀내에는 개인전 최강 수준의 저그가 없다. 유일한 저그 이용자 이창훈은 팀플레이가 주력인 상황. 연습 파트너가 절실하다.

'복서 스타일'은 어디로 간 것일까? "같은 팀 최연성 선수가 계속 우승하고 이기니까 물량 스타일을 따라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게 저랑 안 맞았고 오히려 제 스타일마저 잃었죠."

역시 게릴라와 전략, 컨트롤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즘엔 팀내 같은 테란인 최연성 김현진의 경기는 일부러 보지 않아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경기에만 집중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지난해부터 게임 도중에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란 딴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정신을 차려 보면 이미 패색은 짙어 있고….

자가진단에 따르면 복서 스타일은 아직도 50% 이상 돌아오지 않았다. 원인은 자신감과 스타일에만 있지 않았다. 바로 마음이었다.


▲ 다시찾기 #2. 젊은 날의 초상

2002년까진 게임밖에 몰랐다. 그런데 2003년부터 세상에 눈을 떴다. 그의 20대 앨범엔 우승사진과 기사 스크랩만이 가득했다. "게임 외의 것들, 여자 친구와의 애틋한 추억과 여행, 즐거운 기억들이 갑자기 절실하게 다가왔어요." 젊은 날에 대한 상실감 때문에 게임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2003년 초부터 한 1년 반 동안 방황만 했던 것 같아요." 놀고 싶었다. 그런데 '놀 줄'을 몰랐다. 그의 입에서 '대인기피증'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경기장이 아닌 밖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게 부담돼서 그래서 일부러 이상한 행동을 보여 도망가게 만들 때가 많았다.

임요환에게는 올해 초 정말 좋아하게 된 여자가 생겼다. 지난 두 달간 연습과 스케줄 외에 시간이 날 때마다 만났다. 그러나 도저히 밝힐 수 없는 '사정'에 의해 더 이상 사귈 수 없게 됐다. 힘들게 연애담을 털어놓는 그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제 삶에서 올해 4월만큼 잔인하게 힘들었던 달은 없을 거예요."

자신감, 스타일, 젊음의 기억들. 모두 소중하다. 그러나 다 챙겨갈 수 없다는 건 본인이 더 잘 알고 있다. "정답은 없어요. 무엇을 바라기보다는 노력해서 얻어야죠." 인터뷰 말미, 임요환은 어느새 믿음직한 대기업 프로게임단의 주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여태까지 어떤 성적을 남겼든 어떤 기록을 세웠든 중요하지 않아요. 바로 지금부터 초보 게이머로 재부팅해서 시작합니다." 해답은 자신 안에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24살 임요환은 희망과 상처를 동반한 모습이었다. 팬들은 폭발적인 기세를 타고 성장하던 2001년의 그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기다린다. 임요환의 2004년 채팅창에 띄운다.

'Good Luck!'


군입대 연기로 2007년까지 활동


임요환은 2007년까지 프로게이머 생활을 할 수 있을 전망이다.

현재 다니고 있는 원광디지털대학교 게임기획과를 3학년에 조기졸업하고 내년 말에 대학원에 진학하는 방법으로 2년 더 연기가 가능하다. 다행히 군 입대자원이 충분해 올해 9월 4일 생일 이후에 영장이 덜컥 나올 확률은 없다.

"최대한 연기하고 연기해서 군대에 늦게 가고 싶어요." 다시 돌아왔을 때 자리가 불안하고 프로게이머로서 더 많은 우승을 하고 싶고 e스포츠의 아이콘으로서 많은 역할을 하고 싶다.

"제가 뛰는 동안에 현재 팀리그에 참가하는 11개 구단이 모두 스폰서의 지원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임요환은 팬들과 약속한 '30대 프로게이머'의 약속을 꼭 지킬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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