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로원보다 100배 재밌어˝… ´리니지2´ 65세 송재옥 제주 할망 겜 중
일간스포츠

입력 2006.01.12 22:57

아들, 어머니 치매 예방 위해 2년 전권해
하루 8시간 레벨 72…전국 최고령 게이머



대작 게임 '리니지2'를 즐기는 층은 주로 20~30대다. 몇 시간씩 즐기려면 적지 않은 체력 소모가 요구된다. 이 게임의 전국 최고령 게이머는 누굴까. 무려 우리 나이 예순다섯의 할머니라면 믿어질까. 마흔만 넘겨도 노인으로 여기는 게임계에서 실로 '노인 중의 노인'이다.

아이디가 특이한 '그남자' 송재옥 씨(북제주군 한림면 한림리). 손녀까지 둔 제주 할망이 이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시간은 하루 8시간, '놀랄 노'자다. 벌써 1년 8개월이나 됐다. 이 할머니 게이머는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까막눈이다. 그래서 게임 중 대화창을 이용하지 못하고 겨우 'ㄳㄳ' 등의 글자와 춤 모션의 인사 정도만 가능하다. 그렇지만 게임은 사막 같은 노년의 이 할머니에게 오아시스요, 활력 만점 보양식이다.




■"어! 할머니가 게임을 다 하네."

리니지2(엔씨소프트)는 리니지와 더불어 국내 대작 게임의 선두를 다투고 있는 인기 게임. 아들 박명호 씨(40)가 운영하는 창용 카정비센터에 들어서는 고객들은 할머니가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에 뒤로 자빠지곤 한다. "어! 할머니가 게임을 다 하네."

이렇게 화제를 모으고 있는, 섬 밖으론 몇 년에 한두 번 나갈 뿐인 제주도 할망이 이 게임을 즐기게 된 건 2년 전 아들이 치매 예방 차원에서 권해 준 후부터. 게임 안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만 봐도 즐겁다. 낯익은 캐릭터들을 만나면 이웃집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반갑다. 지금은 3만 명이나 되는 거의 모든 유저들이 할머니를 알아보고 인사를 해 온다. 대화창으로 마음을 전할 수는 없지만 춤추는 행동으로 인사를 건넨다.

아들이 게임하는 것을 자주 봐서인지 게임을 배우는 것은 어렵지는 않았다. 특히 아들 박 씨가 강력 체력 회복제나 이동 속도 향상 물약, 순간 체력 회복제 등을 상점(온라인 게임 내)에서 구입해 향상을 빨리 하도록 많이 챙겨 줬다. 아들은 단축 창에 레벨 향상에 필요한 것들을 많이 넣어 주었다. 할머니의 수준은 레벨 40에서 시작해 이제는 하이 레벨인 72레벨 바운티 헌터(75가 최고 레벨)로 플레이하고 있다.

물론 할머니가 항상 게임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손녀 세 명을 유치원과 학교 보내는 일도 일과 중하나. 할머니는 양로원이나 친구들과 노는 시간은 별로 재미가 없다. "놀러가도 할머니랑 놀아 봤자 무슨 재미냐"다. 차라리 게임을 즐기는 게 지루하지 않고 백배 즐겁다.




■자꾸만 누워 버리는 캐릭터에 하루 종일 눈물

처음 온라인상에 할머니가 등장할 때는 중국인 유저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글을 모르고 단축키로만 플레이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할머니인 줄 모르는 유저에 의해 전면전이 아닌 무한 필드 척살(사냥터의 싸움)에서 하루에서 몇 번씩이나 누운(캐릭터가 죽는 것) 경우가 허다했다. 캐릭터가 자꾸만 쓰러지니 너무 속상해서 하루 종일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그때 당시 군주였던 '행운아템'님이 "'그남자'를 죽이지 말고 차라리 나를 죽여라" 소리쳐서 넘어갔다. 이때 이후 군주가 친히 '65세/할머님 겜중'이라는 호칭을 달아줘 지금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할머니의 불만은 수백 개의 사냥터가 있음에도 맵을 몰라 '실렌'에서만 1년 넘게 사냥을 해 온 점. 그래서 한 달 전 아들이 사냥터를 72레벨에 맞는 '화염'으로 옮겨 줘 요즘 더 신이 난다. 게임을 즐기게 되면서 얻은 것도 많다. 예전보다 아들 손녀와 더 많은 대화를 하게 되었다. 아직도 컴퓨터를 켜고 끄는 것을 몰라 여전히 일일이 물어 보는 처지지만 그렇게 사소한 것 부터 게임 내용까지 대화를 하게 되어 서로간에 예전보다 더 가까워졌다.

오는 31일 할머니는 생일을 맞는다. 아들은 그녀를 위해 A급의 아이템을 맞춰 줄 계획이다. 지금 있는 아이템에다 게임머니 5000만 아데나(15만 원 상당)를 보태면 최상급의 아이템으로 무장한다. 온라인의 아이템 목록을 선물로 주고받는 어머니와 아들. 온라인 강국 한국의 제주도에서 출현한 21세기 초반의 최첨단 생일 선물이리라.

박명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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