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68세 게임광 할머니 고니시씨
˝새 게임 기다리는 내 심정 잘 알겠네˝
일간스포츠

입력 2006.01.12 22:59

□□보도 ´리니지2´ 마니아 송계옥 할머니 이야기 듣고 탄성
40대 ´테트리스´부터 시작… 60세 PC 게시판에 커밍아웃

"오카상도 오나지 오바상가 강고쿠니모 이마스요(엄마랑 똑같은 할머니가 한국에도 있어요).” 일본인 아키코 씨는 한국 유학 시절부터 즐겨보던 일간스포츠에서 '리니지2'를 즐기는 제주도의 65세 송계옥 할머니 기사(10월 19일 보도)를 읽고는 뒤로 넘어갈 뻔했다. 게임을 즐기는 자신의 어머니가 유별나다고 생각한 그는 한국에도 게임광 할머니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 반 반가움 반으로 어머니에게 즉각 이 기사가 실린 인터넷 웹 사이트를 보여 드렸다. 고니시 할머니는 딸이 번역한 이 기사를 들으며 무릎을 쳤다. "고노 오바상노 하나시가 마사니 와타시노 고도네(이 할머니 이야기가 바로 내 이야기네).”




■한국엔 65세 '리니지' 게임광, 일본엔 68세 '파이널 판타지' 오타쿠

일본 도쿄에서 1시간 거리의 사이타마현. 나이 68세의 고니시 가즈에(小西和惠) 할머니.

"한국 게임광 할머니 기사 때문에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갔어요.”

고니시 할머니가 같은 취미의 할머니 이야기를 반가워했던 건 그동안 자신이 게임을 하면서 겪은 설움과 주변의 비협조(?) 때문이었다. 할머니 주변엔 파이널 판타지에 대해 물어 볼 만한 사람이 없었다. 젊은 나이지만 게임을 즐기지 않는 딸(39)과 아들(37)에게 게임 방법을 물어 보면 돌아오는 건 묵묵부답. 4년 전 사별한 남편에게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동네 노인당(한국의 경로당)에도 맞장구쳐 줄 게임 동료는 없었다. 할머니의 날쌘 손동작을 존경스러워하는 여덟 살 손자와 여섯 살 손녀가 유일한 위안이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5~6학년이 되면 손수 가르쳐서 정식으로 겨루어 볼 계획이란다.




■"얘야, 나랑 같이 게임하러 가자."

고니시 할머니는 고향 교토에서 대학을 나와 결혼과 함께 도쿄로 왔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어려웠던 사회 분위기 탓에 집에서 살림하고 자녀를 키우던 할머니의 일상은 너무나 무료했다. 교육 도시로 늘 평온했던 고향과 너무 다른 도쿄에 정을 붙이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1984년 커피숍에서 처음 본 간단한 게임기가 40대 중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주변 시선에 민감한 주부라는 처지 때문에 하교 중이던 고등학생 딸을 게임센터(한국의 게임방)로 데리고 가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테트리스'를 했다. 급기야 남편을 졸라 거금을 주고 컴퓨터를 구해 마음 편히 집에서 게임을 즐겼다. 게임 오타쿠로서 본격 출발이었다.




■나의 게임 동료는 중.고등 학생

"에너지 게이지가 조금밖에 안 남았는데. 한 대만 더, 한 대만 더. 와, 클리어했다.”

파이널 판타지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게임 어려운 줄 몰랐다. '싸이(주사위 게임)'나 'IQ 파이널', '상해' 같은 게임은 매뉴얼 북 없이도 쉽게 조작할 수 있었다. '드래곤 퀘스트'의 테마 음악은 감미롭기까지 했다. 그러나 파이널 판타지는 달랐다. 매뉴얼 북을 사서 연구해도 쉽게 정복할 수 없었다. 좁은 동네를 벗어나야 했다.

할머니는 1997년 60세의 나이로 커밍아웃을 선언했다. 파이널 판타지의 PC 게시판을 부지런히 드나들며 해결책을 구했다. 그래도 어려울 땐 게시판에 질문을 올려 주로 중학생과 고등학생 동료(?)들의 도움을 받았다.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근 10년간 알고 지낸 여대생이 게임 선생 역을 해 줘서 여간 편안한 게 아니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에도 도전하고 싶다."

게임은 할머니 하루 일과의 중심이다. 자녀들이 결혼하고 남편과 사별한 뒤부터 살림에 뺏기는 시간은 거의 없다. 노년의 저녁은 침실에 들기 바쁘지만 할머니는 밤 10시부터 본격 게이머로 변신한다. 깨끗하게 샤워한 뒤 정갈한 마음으로 플레이스테이션 앞에 앉는다. 보통 새벽 2~ 3시까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친척이 와서 밤늦게까지 있으면 게임을 할 수 없어 불안하다. 일종의 금단 현상이다.

새 게임이 나오면 하루 종일 게임에 매달리곤 한다. 초기엔 게임하는 도중 전화벨이 울리면 짜증이 났지만, 이젠 도가 텄는지 아예 벨소리를 무시하고 게임 삼매경에 빠져든다. 전 세계 아이들에게는 해리포터 책 출간이 손꼽아 기다려지지만, 할머니에게는 파이널 판타지 출시가 밤을 꼬박 새우고 싶을 만큼 기다려진다.
큰딸 아키코 씨는 "어렸을 땐 다른 어머니들과 너무 다른 취미를 갖고 있어 이상했지만 정신을 집중할수 있는 게임 덕분에 어머니의 정신 건강은 아직도 20대인 것 같아요"라며 게임의 긍정 효과를 인정했다.
고니시 할머니는 "평생을 콘솔 게임만 했는데 이제는 한국의 온라인 게임에도 한 번 도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강인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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