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권의 책] 일흔다섯 원로 시인이 전하는 '의미의 다이아몬드'
일간스포츠

입력 2006.01.12 22:40

눈 위를 달리는두 대의 그림자 버스

일흔다섯을 산 원로 시인의 시가 젊은 시인이 무색할 정도로 난해하고 신선하다. 일자일행(一字一行)이라는 일자시는 극단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집은 재미있고 유쾌하다. 성찬경 시인이 추구하는 가볍지만 정밀한 시의 결정들. 시인은 이를 "의미의 다이아몬드"라고 강조했다.

'흙'이나 '똥'이란 시에는 제목만이 있다. 본문은 텅 비어 있다. 그 비어 있음에 세상의 모든 의미들이 가득 차 있다. 이 공백은 미술적 개념에 속하는 공간이다.

이 시집의 표제작인 '논 위를 달리는 두 대의 그림자 버스'를 보자. "논과 그림자 버스는 알몸과 알몸"이라는 표현이 절묘하다. 그림자와 논은 완벽한 평면으로 겹쳐진다. 그 겹쳐짐이 시각이 되고 촉각이 되어 관능적 느낌으로 타고 오른다.

"납작한 밀착이다. /철저한 천착이다. /완벽한 이별이다. /흔적은 무구(無垢)다."

문학평론가 이경호는 이 대목에서 감각과 관념, 혹은 감성과 지성의 두 이질적 요소의 결합을 발견해 낸다. "부자연스럽고 낯설지만 싱싱하고 입체적"이라고 시의 매력을 평가했다.

이 시들은 대개 1990년을 전후해서 쓰여졌다. 시인으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인식이, 이제 어디로 가도 상관이 없다는 인식으로 바뀐 시기다. 그는 그렇게 곱게 나이 들어 해방과 자유를 얻었다. 이 시집을 읽다 보면 떠오르는 것은 그의 시구 한 구절처럼 양지바른 남향 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눈을 감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청명한 가을날의 '무량한 행복함'이 스민다.

성찬경 지음. 문학세계사. 152쪽, 7000원.

박명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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