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길은 이미 어제가 되었고 우리는 새로이 시작점에 서 있다. 중국에서부터 본다면 그 길은 카시가르에서부터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까지 이어지는 길로 1300㎞가 넘는 산악도로이다.
이 길은 수천미터급의 흰 고봉들이 줄지어 있는 곳을 지나는 만큼 지형이나 날씨의 기복이 심하다. 물론 지금껏 지나온 길들도 그리 호락호락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도로 포장상태나 고도 등을 고려해보면 전보다 덜하지는 않을 것 같다.
첫날의 목적지인 게즈까지는 카시가르에서 120㎞를 더 가야 한다. 도로의 상태는 포장이 돼 그리 나쁘지 않지만 아주 서서히 높여가는 고도가 은근히 버겁게 느껴진다.
라이딩을 하면서 제일 힘들어 하는 구간이 바로 이런 곳이다. 차라리 경사가 심한 코스가 더 수월하다. 그만큼 빨리 고도를 높이고 다음 라이딩을 이어갈 수가 있는데 아주 서서히 높아가는 구간은 전체가 오르막이어서 갈수록 힘이 든다.
산악지형에서의 경험이 부족한 일행은 목적지를 10㎞ 남기고 노숙을 하기로 했다. 다행히 길가에 창문이 다 벗겨져나간 건물이 있어 비는 피할 수 있었다. 식사를 준비하던 중 처음으로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났다. 그것도 우리처럼 자전거를 타고 가는 여행자였다. 누구보다 반갑다.
얼른 뛰어내려가 인사를 하고 몇마디 나눠보았다. 스페인에서 왔고 카시가르에서 이슬라마바드까지 간다고 한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묵었던 카시가르의 호텔에 같이 묵었고 출발일도 같다는 것. 상황이 좋지 않으니 자고 가라고 했지만 먼저 간 일행이 있어 게즈까지 무조건 가야 한단다.
다음날 게즈를 지나 카라쿨호수로 향하는 길은 처음의 얼마 구간을 제외하고는 수십㎞ 구간이 완전한 비포장이다. 카라쿨호수에 도착한 우리팀과 스페인팀은 무즈타그아타가 보이는 호수 주변의 게르(천막 형태의 유목민 주거지)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어젯밤 우연히 만나 오늘은 거의 전구간을 같이 라이딩을 했으니 많은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더라도 서로가 이미 친구가 되어 있었다.
이곳 게르의 주인집은 식구가 여섯인데 남자 주인과 부인. 자녀 셋 그리고 21살 된 여동생이다. 그런데 이 식구들이 저녁 먹을 때도 우리 게르에서 나갈 생각을 않더니 급기야 잠잘 시간이 돼도 이불까지 깔고 누우려 한다.
‘혹시 여기서 같이 자는 거 아냐?’하며 걱정을 했는데 정말일 줄이야. ‘여기서 같이 자는 거야?’하고 주인한테 물으니 씩~웃으며 그렇단다. 이 작은 게르에 열 명이 같이 잔다니 말도 안되지.
우리는 생각할 것도 없이 일제히 ‘No~!’라고 외치고는 나가달라고 했다. 주인 아저씨는 약간 서운하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잠시 후 옆 게르에서 말소리가 들리는데 잘 들어보니 스페인어는 안들리고 그 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하…이 식구들 스페인팀한테 갔나 보다. 미안한데….’
그렇게 하루가 가고 다음날 아침 스페인팀의 오거스틴이 나를 보며 마치 황당한 일이 있었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미 눈치챘지만 모르는 척하며 무슨 일 있었냐고 물었다. “어젯밤에 온 식구들이 몰려와서 같이 자는 통에 제대로 잠을 못잤다. 피곤하다”고 한다.
아침의 카라쿨은 호수에 비친 하얀 무즈타그아타로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 정헌형은 고요한 호숫가에 서서 무즈타그아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