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도전] ‘박치기왕’ 김일 <82>
일간스포츠

입력 2006.09.05 14:45

영화 <역도산> 피습 장면·폭력 화신 왜곡
전치 2주에 수술도 잘됐는데 사망 의혹

잠재적 시한폭탄은 마침내 터졌다. 1963년 12월 8일 스승은 일본 도쿄 아카사카에 위치한 뉴재팬호텔 뉴라틴쿼터나이트클럽에서 스미요시가이(住吉會) 소속의 대일본 흥행 담당인 스물네 살 무라타 가스시(村田勝志)와 사소한 시비가 붙어 칼에 찔렸다.

무라타와는 화장실 안에서 시비가 붙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난 화장실 밖에서 시비가 붙었던 것으로 들었다.
 
여기서 바로잡고 싶은 게 있다. 한국에서 제작됐던 영화 <역도산> 은 스승이 무라타를 마구 때려 그가 생명 방어 차원에서 칼로 찌른 것으로 그렸다. 물론 사실을 토대로 한 영화라 해도 픽션이 곁들여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영화가 스승의 죽음을 왜 그렇게까지 그렸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로 인해 마치 스승이 폭력의 화신인 양 비쳐진 것이 서글프다.
 
내가 알기로는 스승은 그렇게 폭행을 휘두르지 않았다. 당시 신문을 보면 무라타는 오른쪽 눈 밑 부분에 가벼운 타박상 정도 상처를 입었다. 뺨 한 대 맞은 것과 같은 경미한 상처다. 내 머리가 돌이라면 스승의 주먹은 쇠다.

스승은 가라데 촙이 특기가 아닌가. 그 주먹에 얼굴 한 대 맞으면 상대방은 어떻게 될까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 무라타의 상처가 경미하다는 것은 영화 장면처럼 스승이 무라타를 마구잡이로 폭행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좋다. 여기까지는 이 사건이 영화의 얘기처럼 우발적 폭행이었다고 치자. 문제는 다음에 발생했던 사건의 연속성이다. 칼에 찔린 스승은 무대 쪽을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이 나이트클럽이 야쿠자를 시켜 나를 칼로 찔렀다"라며 대단히 분개했다.

스승의 이 말은 이 나이트클럽과 야쿠자 간 연관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나이트클럽이 스미요시가이 나와바리(구역)가 아닌가 추측해 볼 수 있다.
 
칼에 찔린 스승이 전화로 처음 이 사실을 알린 사람이 있다. 동성회 오야붕 정건영이다. 스승이 칼에 찔렸다는 소식을 들은 정건영은 부하들을 풀어 아카사카 스승 집으로 달려가게 했다. 또 다른 공격에 대비한 방어망을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이어 동성회 부두목 한 명과 네 명의 결사대는 무라타를 잡기 위해 그 조직으로 쳐들어 갔다. 그러나 이들은 9일 새벽 스미요시가이 조직원들에게 붙잡혔다.

스미요시가이가 준비하고 있었던 듯한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이때 동성회 부두목급인 노쿠치 마사히치가 그 조직원의 칼에 찔렸다. 노쿠치는 창자가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큰 상처를 입었다. 결국 그는 큰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건졌지만 후유증으로 인해 고생을 해야만 했다.
 
노쿠치가 칼에 찔리면서 동성회와 스미요시가이 간에는 피할 수 없는 대전쟁이 예고됐다. 동성회는 수백 명의 조직원들을 모았다. 스미요시가이도 동성회 공격에 대비했다.

경찰은 양측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혈투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스승 집과 동성회와 스미요시가이 본거지에 경찰 병력을 대대적으로 투입시켰다.
 
그러나 경찰이 투입됐다고 해서 싸움이 멈춰질 것 같지 않았다. 두 조직은 이틀 동안 서로 결투를 벌였다. 일종의 국지전이었다.
 
이 전쟁은 또 한 사람의 오야붕에 의해 멈춰졌다. 당시 정건영이 의형제를 맺었던 야마구치구미 오야붕 다오카 가즈오에게 도움을 요청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때 대타협을 제안했던 인물이 바로 다오카였다. 다오카는 두 조직이 전쟁을 벌일 경우 엄청난 손실이 예상된다며 타협안을 제시했다.

무라타를 스승에게 보내 사과케 한다는 것이었다. 스승에게 사과하러 간 무라타는 동성회 쪽 인사들에게 잡혀 약간의 폭행을 당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 같은 극적 타협이 가능했던 것은 스승의 상처가 경미했기 때문이다. 스승은 전치 2주였다. 수술도 잘됐다. 또 스승은 두 조직 간의 전쟁을 반대했다. 두 조직이 전쟁을 벌일 경우 마치 스승이 야쿠자와 깊이 연관돼 있다는 오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야쿠자 세계에서 말하는 &#39데우치&#39(화해의 표시로 박수를 치며 끝내는 것)를 하면서 화해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1963년 12월 15일 밤 10시쯤 스승이 갑작스레 사망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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