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생활필수품이 된지 오래지만 아직도 내 차 만큼은 남들과 차별화시켜야 성이 차는 것이 우리나라 운전자들의 습성이다.
같은 모델이라도 가능하면 옵션이 하나라도 더 포함돼야 한다. 스스로에게는 고급스러움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고, 대외적으로는 자기과시용 도구인 셈이다.
운전의 편리를 위한 사양도 있지만 단지 장식에 불과하거나 폐차 때까지 '손끝 하나도 대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다. 뭔가 좀 더 다른 형태의 차량이 출고되면 멀쩡한 차를 폐차시키면서까지 교환을 '불사'한다. 각종 편의장치에 '목숨을 건다'는 표현까지 나올 지경이다. 매년 연식변경 때마다 차량 가격이 오르고, 국내 차량 수명이 5년 내외에 불과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같은 한국 소비자의 습성을 파고든 것이 수입차 시장이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 등 원산지에 비해 턱없이 비싸 수입차 업체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난이 일지만 "네 차에는 이거 없니?"라는 비아냥을 듣기 싫어 가능하면 비싼 차를 선호하는 것도 차량 가격 상승에 한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한국 소비자들이 유난히 선호하는 사양은 어떤 것이 있을까. 가장 일반적인 사양은 자동변속기이다. 국내에 출시된 차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자동차 천국인 유럽에서는 '운전하는 재미'를 위해 수동변속기가 대세다. 국내 완성차업계도 유럽 등지로 수출하는 모델은 90% 이상이 수동변속기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는 정반대 현상을 보인다.
최근 두드러진 변화는 도어 손잡이이다. 주행중 공기 저항으로 인한 소음 등의 이유로 과거에는 일부 고급 모델을 제외하곤 대부분 위로 올리면서 여는 방식이었지만 최근에는 소형 모델까지 당기는 도어 손잡이가 적용되는 추세다.
또 하나의 대세는 '반짝반짝' 빛나는 크롬 도금 부품이다. 전체적 디자인과의 조화는 뒷전이다. 최근 출시된 모델의 라디에이터 그릴은 예외없이 크롬으로 돼 있다. 그리고 도어 손잡이는 물론, 도어의 테두리를 두르는 B필러, 휠에 이어 심지어 실내 앰프나 테일램프 테두리까지 크롬 도금 부품을 채택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국내 완성차 업계는 연식 변경이나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내놓을 때 크롬 도금 부품을 대거 적용하는 추세다.
LED 테일 램프도 빼놓을 수 없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국산차나 수입차를 막론하고 최고급 모델에만 적용되던 LED 램프는 중·소형 차량에도 적지 않게 볼 수 있게 됐다. 물론 차량 출고 당시부터 적용된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구입 후 별도로 장착한 것이긴 하지만.
인터넷 강국답게 MP3·USB 등 하이테크 기능을 옵션 또는 기본 사양으로 내놓고 있다. 수출용 차량에는 최상급 모델에만 들어가기도 하지만 국내 시판용 모델은 마티즈부터 옵션으로 채택되고 있다.
일부 카 마니아들은 기본 모델을 출고한 뒤 튜닝을 통해 자기가 좋아하는 사양만을 선택해 장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밖에 엔진이나 성능보다 차량 크기를 중시하며,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도 강하다.
이같은 추세에 대해 국내 완성차 업계의 한 자동차 디자이너는 "실용성보다 남들에게 보이려는 과시욕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자동차를 개발할 때 불필요하다고 생각되지만 소비자의 선호도를 무시할 수 없어 (일부 사양을)도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