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광장문화’ 거리에서 승리의 꽃을 피우다
일간스포츠

입력 2008.05.23 13:17

1960년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주인공 이명준은 자유와 소통을 위해 ‘밀실’을 벗어나 ‘열린 광장’을 찾아 나선다. 5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광장의 의미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늘도 우리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드러내기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해 주저 없이 광장을 찾는다.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과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같은 사회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광장은 더욱 가깝게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더욱이 이제는 인터넷상의 ‘광장’도 수많은 누리꾼들의 열린 공간으로 진보를 거듭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 거대한 ‘광장 문화’의 힘과 의미를 조명했다.



2005년 10월 청계천이 복원돼 개장한 이래 2008년 5월 중순까지 약 6700여 만명이 청계천을 찾았다.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코스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이렇게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청계천이 2008년 새로운 물줄기를 만나고 있다.

구경하는 청계천에서 참여하는 ‘청계광장’으로 주목 받고 있기 때문이다. 청계천이 시작되는 청계광장은 최근 매일 저녁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가 열리면서 공론의 장소가 됐다. 서울 세종로와 대학로, 광화문과 시청 앞이 갖고 있던 광장의 이미지가 청계광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2008년 청계광장까지 시대에 따라 변천을 거듭해온 우리의 광장을 되돌아본다.

■목숨을 걸고-세종로와 대학로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이후 일어났던 운동을 돌이켜보면 세종로가 먼저 주목 받는다.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에서부터 1960년 4·19 학생운동까지 세종로는 그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1970년대 반유신투쟁과 민주화운동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따라서 대학 캠퍼스가 주요 무대였다. 그러나 77년 후반부터 가두시위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78년 6월엔 광화문 네거리에서 대학생과 시민의 궐기대회가 일어났다.

‘서울의 봄’을 맞이한 1980년에 들어서는 주로 군부세력 타도와 반미·반제국주의를 내세웠다. 1987년 6·29선언을 이끌어낸 6월 대항쟁은 넥타이부대의 탄생을 알렸다.

이 때도 주로 세종로를 비롯해 종로, 대학로, 시청 앞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당시 시청 앞 광장에서는 ‘걸개그림’이 걸려지면서 분위기가 한층 뜨거워졌다. 이 때 주장으로는 군부독재타도, 호헌철폐, 민주헌법 쟁취, 민주정부수립, 직선제 개헌 등이 있다.

당시엔 도심의 거리가 광장의 역할을 했고, 학생과 시민들은 거리로 거리로 밀려나오면서 도시를 광장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구속, 감시, 강제연금 등을 당했다. 심지어 이한열 열사를 비롯해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나왔다.


■역사의 변천을 말해주는 여의도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우리 역사의 변천을 보여주는 광장으로는 현재 여의도공원인 5·16 광장을 들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정부 시절 여의도 개발계획에 따라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공군비행장이 5·16광장으로 바뀌었다.

1974년엔 대통령 부인 육영수 암살 사건과 관련해 이곳에서 대규모 반일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5·16광장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시민과 학생, 노동자들이 반정권시위를 자주 벌인 곳이기도 했다.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전두환 정권이 등장하면서 광장의 이름은 여의도 광장으로 바뀌었다.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부 때는 광장을 없애고 시민들이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원을 만들기로 결정,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여의도공원을 지으면서 오늘날의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축제처럼-시청 앞 광장과 청계광장

1990년대 이후 시민운동의 영역은 환경, 여성, 의료 등으로 다양화되면서 각개약진의 형태를 띠게 됐다.

정태춘, 박은옥의 노래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라는 가사로 이런 변화를 실감케 한다.

특히 2002년엔 정치적, 이념적 목소리를 내던 광장이 신명 나는 공간으로 완전히 탈바꿈하기도 했다. 분노와 두려움이 함께 했던 장소가 기쁨과 즐거움의 축제 공간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일 월드컵 기간 서울시청 앞 광장은 붉은 물결로 넘쳐났다. ‘붉은 악마’로 변신한 사람들은 흥겨운 함성으로 모두 하나가 됐다. 이런 자발적 동참은 ‘효순·미선양 사건’에선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촛불문화는 광우병과 관련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라는 목소리로 현재 청계광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방현 기자 [ataraxia@joongang.co.kr]
관련뉴스
I Hot
인기 VOD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