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에도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국내공연이 있었다. "노래가 아주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노련한 연기로 풀어낸 고 추송웅의 유다 역은 정말 인상적이었다"고 뮤지컬 배우 남경주는 회고한다.
현대극장이 제작한 이 작품에서 윤복희는 막달라 마리아를, 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유인촌은 빌라도 역을 맡았다. 알고 보면 이 작품은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식 라이선스를 받지 않은 '해적판'이었다.
오는 11월 2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법적으로 이번에 국내 초연이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1980년대·90년대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본 팬들도 많다.
과거 세 차례 공연(1985년·86년·98년)은 저작권 허가 없이 올랐지만 당시 뮤지컬에 목마른 팬들에겐 감동이었다. 유명 뮤지컬은 대부분 이런 과거와 현재를 가지고 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캣츠' '시카고' '에비타' 등 유명작들의 'Old & New'를 소개한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
우크라이나의 작은 유대인 마을에서 펼쳐지는 아버지와 다섯 딸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데뷔 후 첫 뮤지컬에 도전하는 노주현과 무대의 베테랑 김진태가 아버지 테비에 역으로 더블 캐스팅 됐다. 토니상을 11개 부문 수상한 만큼 작품성은 인정 받고 있다.
저작권 개념이 없던 1980년대에도 이 작품은 인기작이었다. 서울시립가무단(현 서울시립뮤지컬단)에 의해 세 차례 제작됐으며, 1985년 초연 당시 백상예술대상·연출상·연기상을 휩쓸었다. 아버지 테비에 역으로 송용태(85년)·이의일(86년)·김진태(98년)에 이어 노주현과 김진태가 계보를 이어가게 됐다.
배우 이흥구의 경우 85년 초연부터 이번 무대까지 빠짐 없이 출연했고, 첫째 사위 모들 역으로부터 이번에는 최고령 랍비 캐릭터를 맡았다. 1998년 공연에는 김성기·전수경도 출연했다. 1986년 공연 당시 테비에의 막내딸로 출연한 아역 탤런트 이재은은 당시 대학생이었던 이경수와 동반 출연을 인연으로 실제로 결혼에 골인했다.
'시카고'
2008년 최고의 해를 보낸 뮤지컬 '시카고'는 놀랍게도 국내에서 한 건의 무허가 공연이 없었다. '시카고'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70년대이지만 세계적으로 각광받게 된 계기는 1998년 리메이크작이 등장하면서부터. 국내에서도 지나치게 미국적인 정서가 강한 시카고를 주목하지 않았던 셈이다.
신시뮤지컬컴퍼니의 2000년 버전이 국내 초연작이다. 당시에는 대본과 음악 라이선스만 가져와서 연출과 춤은 국내에서 마음대로 변형할 수 있었다. 최정원·전수경이 록시로, 인순이가 벨마로 나선 2000년 버전은 2주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4000석의 세종문화회관을 매진시킬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2000년 버전에선 지금과 달리 무대 위에 피아노가 올려져 있었고, 록시가 피아노에 걸터 앉아 노래를 불렸다. 신시뮤지컬컴퍼니 측은 "당시 인순이가 처음으로 뮤지컬에 도전하게 돼 무척 힘들어했다. 그런 식의 춤을 춰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캣츠'
2008년 하반기 최고의 흥행작인 뮤지컬 '캣츠'(12월 31일까지 잠실 롯데샤롯데씨어터)는 과거 무허가 공연에 무척 시달렸다. 저작권을 가진 영국 RUC가 1993년 투어 형식으로 잠시 예술의전당에서 '캣츠' 초연을 했다.
라이선스권을 획득한 설앤컴퍼니가 본격적으로 무대에 올린 것은 2003년 여름 빅탑씨어터 공연이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에도 판뮤지컬컴퍼니가 무대에 올렸고, 2000년에는 극단 대중이 제작을 시도했다가 RUC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2000년 무허가 '캣츠'에서 배우 황정민이 바람둥이 고양이 럼 텀 터커로, 이계인이 극장 고양이 거스로 출연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황정민의 아내 김미혜도 드미터로 출연했다. 2008년 첫 공식 한국어 공연에선 옥주현과 신영숙이 그리자벨라로 최고의 무대를 끌어가고 있다.
'에비타'
1981년 현대극장에 의해 초연됐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작곡한 이 작품의 국내 무허가 초연작에서 이경애와 유인촌이 각각 에비타와 페론 대통령역을 맡았다. 조영남이 체 게바라로 등장한 점이 이채롭다. 이 작품을 바탕으로 영화 '서울 에비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1988년에는 81년과 똑같은 캐스팅으로 한 번 더 공연됐다. 정식 라이선스작 초연은 2006년 LG아트센터 버전이다. 배혜선과 김선영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에바 더블로, 남경주가 체 게바라로 낙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