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re you ①] 박일준 “이제는 웃는 박바마, 노인들 위해 살겠다”
일간스포츠

입력 2009.11.11 11:42


“제 별명‘연탄’에서 ‘박바마’로 바뀌었어요.” 세상 많이 달라졌다. 60대 샌디 김(흑인 혼혈)에 이어 혼혈아 가수 2호 박일준(55). 그에겐 어렸을 때부터 ‘연탄’이라는 주홍글씨와 혼혈아라는 편견에 시달렸다. 이제 예순을 5년 앞둔 나이다. 지난 4월 큰 아들 결혼식도 치렀고, 손주도 얻었다. 그는 “도무지 실감이 안난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술집 차렸다 패가망신, 알코올 중독

지난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그에게 전화가 빗발쳤다.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올 것이 왔다. 벌써 왔어야 하는데 늦은 감이 있다”고 답했다. 그는 기자가 묻기도 전에 어렸을 때부터 받았던 놀림·설움에 못이겨 15세에 술·담배에 손댄 것 등을 털어놓았다. 그는 스무 살 때 미 8군에서 음악을 시작해 2년 후 “배가 고파” 양지로 나왔다.

1977년 ‘언체인 멜로디’의 번안곡 ‘오 진아’로 데뷔해 첫 타석 홈런을 날렸다. 첫 TV 출연 때다. PD가 “얼굴 바꿔가지고 오라”고 했다. 너무 억울해 “음악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너를 소개해주고 다니는 나는 어떻겠냐”는 매니저의 한마디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2년 후엔 ‘아가씨’로 연속 히트해 외도까지 했다. MBC TV ‘폭소대작전’에 출연해 배일집과 ‘햄벅~’을 외쳤고, 유현목 감독의 ‘상한 갈대’를 비롯 영화 4편에 출연했다. 그 후 신곡 발표보다는 밤무대를 자주 섰고, 사람들한테는 잊혀져갔다.

그에게 91년과 2002년은 감당하기 힘든 좌절의 해였다. 91년 “술집을 하면 잘된다”는 주위에 유혹에 넘어가 서울 논현동에 술집을 냈다. 그런데 덜컥 ‘12시간 심야영업 금지’에 걸려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신문에도 크게 나고 식품위생법으로 두 달 동안 ‘법무부 대학’도 다녀왔다. 이 사건으로 심한 좌절감에 빠져 신곡도 내지 않고 매일매일 술로 세월을 삭였다.

2002년에는 급기야 간이 나빠질 대로 나빠졌다. 알코올 중독 상태에서 응급실로 실려갔다. 식도 정맥이 터져 임산부처럼 위에 복수가 가득 찼다. ‘피 토하고 죽는다’는 말을 떠올릴 정도로 병원에서 많은 피를 토해냈다. 생존 확률 50%. 그때 “아들 결혼하는 거 보고 가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났고, “퇴원하면 뭐든지 하겠다”고 결심했다. 다행히 중환자실 20일, 일반 병실에서 2개월을 보내고 퇴원했다. 그에게 이후 삶은 덤이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가 입에 붙었다.

2005년은 그가 재기에 성공한 해다. 직접 제작한 ‘왜왜왜’라는 음반 홍보를 위해 CD를 들고 전국 방송사를 다 돌았다. 쉰 시간만큼 인맥도 모조리 끊어졌지만 그렇게 다시 일어섰고, 무대에 다시 올라 너무 행복했다. 지난해엔 ‘트위스트박’도 발표했다.



예순 이후 남아 있는 소망 두 가지

그는 예순 이후에 두 가지를 실천할 예정이다. 우선 예순이 되면 의사 친구 둘이랑 버스 한 대 사서 한국의 오지를 돌기로 했다. 친구들은 할머니·할아버지에게 침과 주사를 놔주고, 자신은 노래를 부르기로 약속했다.

또 한가지는 월남전 때 한국군과 현지 베트남 여성 사이 태어난 혼혈아 ‘라이따이한’을 도울 계획이다. 우리가 너무 오래 모른 채 해온 그들을 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다. 한국에도 다문화(한국인+외국인) 가정이 100만명을 넘었다. 그는 더 이상 혼혈아라는 뼛속 깊이 새겨진 편견이 이제는 지구상에 남아있지 않기를 바란다.

아직도 “밤무대에 서면 그의 ‘오, 진아’ ‘아가씨’를 불러달라는 40, 50대 팬들 때문에 즐겁다”는 그는 며칠 전 임종수 작곡가로부터 34년 만에 받은 처음으로 받은 곡 ‘행복해라’로 내년 봄 신곡을 선보인다. 전통 가요지만 자신만의 소울을 가미해 ‘안 꺾이는 트로트’로 “다시 한 번 박일준 색깔을 보여 주겠다”며 싱긋 웃었다.



“날 버린 친부모 용서 못한다” 슬픈 과거

그의 가족사는 슬프다. 그의 어머니는 피란 시절 미군에 의해 겁탈당했다. 그를 임신했으나 두 살된 그를 고아원에 놓고 사라졌다. 태어날 때 그를 받아준 양엄마 밑에서 자랐다. 양 엄마는 그가 “오, 진아”로 한창 뜰 때 세상을 떴다. 그는 최근 한 아침 방송에서 “친부모를 용서 못한다”고 해 검색순위 상위에 올랐다.

그는 생모는 만나지 못했지만 생부는 86년 미국에서 만났다. 하지만 만나자마자 돌아서서 나왔다. 그는 “나를 비난해선 안된다. 당신들이 당해 봤느냐. 어머니는 이해해도 아버지는 용서 못한다”고 했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집에서 그의 나이는 8살이다. 쓰러졌다 다시 태어난 지 8년. 아내는 “당신을 책임져 주겠다”며 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를 해준다. 고아와 혼혈아였던 그가 가수인 줄도 모르고 만났던 아내다. 그의 집은 내년 봄이면 아파트로 바뀐다. 30년 동안 살아온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의 집이 재개발이 돼 44평 아파트 입주를 눈앞에 뒀다.

그렇지만 “내 마당이 있는 집을 갖고 싶어” 가족이 안착할 땅을 원당 부근에서 물색 중이다. 음악목사의 길을 가는 큰 아들과 작곡과를 나와 스튜디오를 마련한 딸이 언제든지 쉬고 갈 수 있도록 말이다. 그의 월수입은 1500만원 정도. 낚시를 좋아해 태안에 사놓은 산 4000평과 노후 적금으로 1억원 정도 부어놨다.

박명기 기자 [mk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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