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re you ①] 대머리총각, 가수 김상희 기억하세요?
일간스포츠

입력 2009.11.25 10:01


본명 최순강(崔純江), 여자 학사가수 1호, 트레이드 마크가 된 숱많은 머리카락으로 이마를 가린 뱅 헤어스타일. 여기까지 나오면 제 아무리 40대 이후 세대라도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머리총각’까지 나오면 “아하” 대답할 사람, 바로 김상희(66)다. 그는 가수뿐 아니라 오랫동안 방송인으로 우리 곁을 지켜왔다. 그래서일까. 그가 지난 9월 한국방송예술진흥원 학장으로 공식 취임했다. 참, 더 있다. 그는 27년 동안 연예인 봉사단체 ‘한마음회’의 회장으로 세상에 사랑을 뿌려왔다.



고려대도 눈치 못챈 여 학사가수 1호

그녀는 1961년 고려대 법학과 2년 재학 중 KBS 전속가수가 되었다. 그래서 여자 학사가수 1호로 불렸다. 첫 히트곡 ‘처음 데이트’를 녹음한 직후 부른 샘표간장 CM송 덕분에 이름을 알렸고, 이후 ‘대머리 총각’ ‘코스모스 피는 길’ ‘울산 큰애기’ ‘떠날 때는 말없이’ 등의 히트곡으로 톱가수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데뷔 시절 에피소드. 대학생이던 그는 방송활동이나 가수활동을 집과 학교, 양쪽에 모두 숨겨야 했다. 대신 ‘김상희(金相姬)’라는 예명을 썼다. 얼굴이 알려질까봐 공개방송 무대에는 일절 나서지 않았다. 녹음방송만으로 가수활동을 한 ‘얼굴 없는 가수’의 원조다.

김상희라는 이름으로 제법 인기를 얻게 된 곳이 ‘처음 데이트’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재학 중이던 고려대학교에서조차 그가 본교생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대학 4학년 때 ‘처음 데이트’가 히트되고 있던 어느날, 공교롭게도 타고 있던 버스가 굴러 가벼운 부상을 당했다. 마침 학보사 기자가 함께 타고 있다가 신문에 기사화되면서 내가 ‘가수 김상희’였음이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명문대 여대생이 가수활동을 한다는 것이 이토록 힘들었던 시절 이야기다. 그래서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먼저 길을 닦아준 최희준 선배가 고맙다”.




단발머리 고집 혹시 대머리?

김상희 하면 뭐니뭐니해도 ‘김상희표 단발머리’ 헤어스타일과 ‘대머리총각’이다. 데뷔 당시 앞머리 내린 모습에 “이마에 상처가 있다” “대머리다” “가발이다”는 루머가 돌았다. 심지어 그에게 다가와 머리를 잡아당기는 팬도 한 둘이 아니었다. ‘김상희형 머리’로 이름을 단 수출 가발까지 나왔다. 검증완료. 그는 결코 대머리가 아니다.

그는 가수로 일세를 풍미했지만 ‘방송인’으로 40여년 가까이 살았다. 방송하면 바로 남편 유훈근씨가 등장한다. “KBS PD였던 그 사람이 ‘당신의 멜로디’에 나를 픽업했다. 당시 최초 여자 MC라 방송사가 발칵 뒤집어졌다. 그 사람이 방송 잘 안되면 사표를 쓰겠다며 방송국 간부들을 설득했다.”

그는 유PD와는 68년 결혼했다. 4선 의원을 지낸 유청씨의 아들로 종갓집 7대손 장남. 양가 집이 다 들고 일어났다. “종갓집 종손이 어떻게 연예인을 받나.” “조선극장을 경영했던 우리집도 한가락하는데 거기 가서 물 묻히는 거 못 본다.” 남편이 “어른들 안 오면 우리 둘이 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양가 식구 모두 결혼식장에 왔다. 남편 유훈근씨는 KBS PD로 일하다가 MBC로 옮겨 79년 MBC 보도부 차장 시절 정치와 인연을 맺게 된다. 10·26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면복권 되면서 공보비서로 들어갔다. 이 여파로 그는 5공화국 시절 무대에 설 기회를 적어져 이화여대 옆 반평짜리 공간에서 샌드위치를 팔기도 했다.



한마음 봉사 30년, 이제는 학장님

그는 82년 만든 연예인 봉사단체 ‘한마음회’ 회장직을 27년동안 맡았다. 올해 권성희에게 넘겨주었다. “가난한 할머니가 침 하나 맞으려고 땡볕에 두세 시간 기다리는 모습이 짠해서” 시작한 봉사였다. 가는 곳마다 할머니들이 손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눈물샘이 매말라 눈물도 나오지 않았지만 끝내 눈가에 번지던 물기를 보며 하나같이 눈물을 흘렸다. 한마음회는 60명이 넘는다. 권성희·김상배·김병찬·현숙·남궁옥분·인순이·주현미·송대관 등이 단골 멤버다. 매년 6월 1일에는 서울시 거주 1만명의 노인들을 장충체육관에 모신다. 벌써 12년째다.

그가 최근 미래의 방송인을 키우는 일을 시작했다. 지난 9월 한국방송예술진흥원 학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이론에 치중하기보다 방송 실무와 현장 경험을 전수해 주겠다”고 했다. 실제로 인맥(?)을 동원해 강의에 필요한 인기인의 초빙에 힘 좀 쓴다. 학생들이 그를 알까.

“젊은 세대들이 맨 처음엔 뻘쭘한 표정이다. 그러나 집에 가서 엄마 아빠에게 물어보니 열혈팬이라고 해 금방 친해진다”고 했다. 학교 자랑이 빠질 리 없다. “처음 만든 트로트과 교수는 송대관이고, 모던 실용음악과는 인순이다. 송대관은 ‘나는 이렇게 했는데 너희는 이렇게 하라’ 등 체험을 잘 전수한다. 인순이는 타이트하다. 어떨 때는 무섭다. 학생들이 모두 좋아한다.”

그는 “학교에 몸을 담았으니까 학교생활 끝나면 같이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앞으로 남편과 아들과 함께 못 가본 우리나라를 편편한 마음으로 샅샅이 다 돌고 싶다. 맛있는 집도 다 찾아가고 싶다”고 했다.
가수 김상희 프로필

★가수 김상픠 프로필

출생: 1943년생
학력: 고려대 법학과 졸
직업: 가수
데뷔: ‘삼오야 밝은 달(61년)
히트곡: 처음 데이트(64) 울산 큰애기(65) 경상도 청년(66) 대머리 총각(66)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67) 빨간 선인장(69) 홍콩엘레지(70) 즐거운 아리랑(77)

수상: 2005년 KBS 가요대상 공로상, 2004년 제11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대상, 1998년 제3회 예술실연자대상(가수분야) 경력

경력: 한국방송예술진흥원 학장(현), 한국연예인한마음회 27년간 회장, 교통방송 아름다운 서울의 저녁입니다 DJ

박명기 기자 [mk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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