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의 한국팀 첫째 주자 기용. 17일 밤 제12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중국 베이징) 개막식 및 대진 추첨에서 김인 한국팀 단장이 이 사실을 발표했을 때 중국과 일본팀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농심신라면배가 시작된 이래 가장 파격적인 기용이었기 때문이다. 한국팀은 내심 이 9단이 최소 5승 이상 거두어 주길 기대했으나 이 9단은 20일 열린 세 번째 대국에서 중국의 셰허 9단에게 덜미를 잡혔다. 모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 9단은 왜 이런 모험을 했던 것일까. 김인 단장이 ‘모험’이란 제목의 기고글을 통해 일간스포츠에 그 속내를 밝혔다.
처음 선수들 사이에서 이세돌 9단이 제일장(첫째 주자)으로 출전하려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을 때, 설마 그럴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짧게 스쳐가는 판단으로 우리 팀의 전력으론 결코 득이 없는 일이기에 해프닝이겠지라고 여겼습니다. 우리팀 구성원 두 세 명에게 물었더니 사실 그런 상의가 있었지만 확실히 결론난 건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우리팀에서 출전할 제일장 발표가 촉박할 즈음, 이세돌 9단으로부터 제일장으로 출전하겠다는 본인의 각오를 접했습니다. 평소 이창호·이세돌 9단과 대화할 때 상대방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꼭 필요하다고 느낄 때 한 두 차례 더 확인합니다. 그 때 이세돌 9단의 표현이 진실임을 즉각 느꼈습니다. "부담이 될 수도 있을 텐데 괜찮을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이세돌 9단의 생각이 눈빛을 통해 전달됐습니다. 이 전의 농심신라면배 대회에서 이창호 9단 역시 제일장으로 출전하는 의사를 비춘 적이 있지만 저는 반대했습니다. 이세돌 9단으로서도 모험이란 걸 잘 알고 있지만 종래의 방식을 깨트리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이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동료들과 자세히 상의를 못했지만 자신의 심정을 헤아려 달라고 했습니다. 진실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부터 이세돌 9단의 바둑을 몇 배의 관심으로 지켜보고자 합니다.
김인 한국팀 단장(사진 왼쪽)이 17일 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12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개막식 및 대진 추첨에서 이세돌 9단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보여 한국팀 첫째 주자로 나선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옆에 선 화이강 중국팀 단장이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제공=한국기원
베이징=장상용 기자 [enise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