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 하루 300리…기발군은 ‘조선시대 메신저’
일간스포츠

입력 2011.01.07 15:00




구한말 역참의 모습으로 오른쪽에서 두번째 서있는 사람이 기발군으로 보인다. 오른쪽 사진은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도성 주변의 역참도. 마사박물관





마사박물관 마문화총서Ⅵ


한민족은 말과 함께 성장하고 생존했던 기마 민족이다. 고조선부터 조선시대까지 마문화의 전통은 꾸준히 이어졌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륙을 호령하던 한민족의 마문화는 사라졌고 지금은 평생 말을 한 번도 타보지 못한 사람이 많을 정도로 마문화는 단절됐다. 일간스포츠가 한민족의 마문화를 5회에 걸쳐 재조명한다.

채준 기자 [doorian@joongang.co.kr]

①특급 익스프레스 기발
②무력의 상징 기마대
③귀족들의 놀이 격구
④성공의 상징 말 그림
⑤한민족의 말타기

○특급 익스프레스 기발
기발은 요즘말로 하면 관용 '특급 익스프레스'다. 역참 조직을 이용해 중앙과 지방의 소통을 중계하는 소식 전달 체계이자 통치의 중요한 수단이었다. 말을 이용한 기발은 파발의 조직중 하나로 인력을 이용한 보발과 함께 양립해 있었다. 파발은 역참 조직의 기반 위에 세워진 전달 체계였고 역참은 국가 말 산업의 중추를 담당했다.

▲기발조직의 구성
조선시대 전국에 205개의 역참을 설치해 이를 서발·북발·남발의 3대로에 편성했다.

기발은 말을 이용한 기마 통신으로 25리마다 1개의 참을 두고 참마다 발장 1명, 색리 1명, 군사 5명과 말 5필을 배치했다. 이때 군사들은 말에 직접 올라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했다. 기발은 한 사람이 말을 바꿔 타고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역참까지만 서류를 전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역참은 평시에는 국가의 물자 수송과 정보의 소통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전시에는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기병 전력을 충당했다.

▲기발의 전송방법
기발은 기본적으로 쉬지 않고 주야로 달린다. 조선시대 기발은 하루에 300리를 달렸다. 일반적으로 몽고 원제국이 500~600리를 달린 것에 비해 늦은 감이 있다. 한반도 지형이 산악 지형인 것이 원인이었다 .기발의 전송방법은 기밀문서를 봉투에 넣어 봉하고 관인을 찍은 다음 피각대에 넣어 운영했다. 일의 중요도에 따라 방울을 달았는데 방울 셋을 달면 초특급, 둘은 특급, 하나는 일급을 나타내는 표시였다.

직접 소식을 전하는 발군은 창과 방패, 회력을 갖추게 했다. 회력은 도착시각과 문서의 분실 여부를 기록한 것으로 대력과 소력으로 구분하여 대력은 역참에 비치하고 소력은 발군이 지참하여 그 근무실태를 확인하는 증거로 삼았다.

기발의 장점은 보발에 비해서 빠르고 봉수에 비해서 자세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봉수에 비해서 전달속도가 느리고 경비가 많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기발은 보발·봉수와 함께 운영돼 조선시대 통신체계의 골격을 이루었으나 갑오개혁 이후 현대적인 전화·전신 제도의 등장으로 폐지되었다.

▲조선시대 말산업의 근간 역민
역민들이 실제 역참을 유지하는 구성원이다. 이들은 양인이었지만 일반 양인과는 별도로 관리됐다. 이들은 말을 키우고 유지하는 '역역'을 전문적으로 부담했다.

역민들은 이미 고려시대부터 존재했고 역호 또는 역졸이라고 불렀다.. 문헌에 따르면 역참에 근무하는 관리들의 근무지 이탈을 벌하는 기록이 많은데 나라에서 명 한데로 말을 키워내지 못하거나 혹은 병이나 사고로 말을 죽게 하면 매우 엄한 벌을 받았다.

참고자료=한국역제사(한국마사회 마문화총서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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