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 역사속의 명마·기마대 27. 페르시아 기마대
일간스포츠

입력 2011.09.23 13:55

기마대 전술의 원조




페르세폴리스(이란 남서부 팔스지방에 있는 아케메네스왕조의 수도)에서 출토된 페르시아의 말머리 조각상으로 말을 현실적으로 표현했다.


페르시아는 현재의 이란 남서부 지방에서 형성된 나라로 기원전 550년 키로스2세가 메디아의 수도 에크바타나를 점령하면서 대제국의 기틀을 다졌다. 키로스2세와 그의 아들은 리디아·이집트·바빌로니아를 점령하고 제국의 영토를 인도의 인더스강까지 넓혔다. 페르시아가 이처럼 광대한 지역을 세력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전술을 익힌 강력한 기마대를 보유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는 언제나 최소 2만명의 기병을 보유하고 있었고 기마대를 전술적으로 운용한 최초의 나라다.

본래 최초로 기마대를 전력에 포함한 나라는 아시리아였고 기마대를 대규모로 편성해서 사용한 나라는 리디아였다. 페르시아는 리디아와의 전쟁을 통해 기마대의 가치를 알게 됐고 적극적으로 기마대를 수용했다.

아시리아·리디아가 기마대를 활용했다면 페르시아는 기마대를 실 전투에서 주력으로 활용하면서 기마대 전술을 발전시켰다. 페르시아 이전까지의 기마대는 주로 정찰 활동에 주력했다. 전투시에는 적 기마대의 약점을 찾아내며 기마대간의 전투를 했고 적이 보병 전투에서 밀려 후퇴하면 이때 전력을 다해 공격했다.

페르시아는 이 원리를 발전시켰다.

페르시아군의 기본 공격대형은 중앙에 보병을 세우고 양쪽에 기병을 배치했다. 전투를 개시하면 기마대는 기동력을 앞세워 상대적으로 취약한 적의 측면과 후방을 공격했고 보병은 적진의 정면을 공격하도록 했다.

인간과 비교할 때 덩치가 크고 빠른 말이 공격해 오면 보병들은 대체로 크게 겁을 먹고 전열을 유지하지 못했다. 기병은 바로 이 약점을 최대한 파고들면서 공격했으며 도주하는 적에 대해서는 상당히 큰 전과를 거둘 수 있었다.

페르시아 이후 기병은 전쟁에서 핵심적인 기동타격대 역할을 했으며 전투를 승패를 가르는 주요 병종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지속됐다.

한편 페르시아 기마대는 활을 잘 쏜 것으로 유명한데 전투에서는 기병이 먼저 공격을 시작하고 이어서 보병이 공격했다. 이후 전장을 탈출해 적의 측면 후면을 공격해 적을 무력화 시켰다.

당시 페르시아 기마대의 주력 무기는 활이었다. 당시 페르시아 기마대에서 사용한 말은 이전의 아시리아·리디아가 사용했던 강건하고 지구력이 뛰어난 초원의 말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채준 기자 [doori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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