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0대 대기업 그룹의 올해 신년사에는 '성장' '경쟁력' 외에도 '변화' '구조'가 가장 많이 언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시장' '가치' '고객' 등 키워드는 사라지거나 뒷전으로 밀렸다.
최근 장기화되는 불경기로 성장 한계에 직면한 기업들이 성장과 변화를 우선 순위에 두고 공격적인 경영을 나서면서 상대적으로 느슨한 가치지향적 경영목표들이 뒤로 밀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13일 기업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올해 10대 기업 신년사 키워드 중 '성장'은 총 33건 등장하면서 기업들의 가장 주요한 키워드로 꼽혔다. 이어 경쟁력(32건), 변화(28건), 구조(23건), 경영(22건)이 5대 키워드에 올랐다.
특히 '변화'와 '구조'는 작년에는 등장하지 않던 단어로 예년에 비해 공격적인 단어들이 많이 포함됐다. '구조'는 사업구조와 수입구조 등이 자주 언급되면서 사용이 빈번했고 '변화'와 묶인 경우도 많아 올해는 격변의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2년부터 올해까지 5년간 국내 10대 그룹의 키워드에서도 '성장'은 173건 등장하며 가장 빈도수가 높았다. 이어 세계(글로벌, 159건), 경쟁력(153건), 경영(경영환경, 경영성과, 경영관리, 128건), 고객(116건) 등이 100건을 넘어 가장 주요한 5대 키워드로 꼽혔다.
그룹별로도 처한 상황에 따라 키워드에 차이가 있었다.
재계 1위인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부재로 최근 2년 동안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2012년 이후 3년간은 줄곧 '경쟁력'을 그룹의 최우선 목표로 뒀다. 주력인 휴대폰 사업이 애플과 중국 기업들 사이에 낀 상황에서 글로벌 1위 경쟁력 확보라는 목표를 실현하려는 의지로 해석된다.
현대차는 올해는 물론 지난 5년간 ‘세계’를 일관되게 제1키워드로 인용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아직까지 폭스바겐, 토요타, 지엠 등을 쫓는 입장이라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달리 포스코와 현대중공업은 5년 동안 1순위에 꼽혔던 ‘세계’ ‘경쟁’ 대신 ‘구조’ ‘사업본부’ 등 구조조정과 관련된 키워드가 제시됐다. 2개 그룹 모두 고강도 구조조정과 함께 체질 개선을 위한 변화를 꾀하고 있는 점이 투영됐다.
10대 그룹 신년사를 통틀어 처음 등장한 현대중공업의 ‘사업본부’와 ‘흑자’ 키워드는 작년 대규모 적자를 내고 본부별 책임경영에 기반한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 배경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
전자부문의 위기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LG는 5년 동안 ‘고객’이 1위 키워드였지만 올해는 ‘사업(사업구조, 사업방식 등)’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또 새롭게 등장한 ‘변화’라는 키워드도 3위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총수가 경영에 복귀한 SK와 한화는 ‘패기’ '1위' 등을 제시해 모두 공격적 행보를 예고했다. SK는 올해 5년 이래 처음으로 '패기' '사회' '투자'를 신년사에 등장시켰다. 한화는 '세계'와 '경쟁' 외에 ‘1위’ ‘핵심(사업 역량 등)’ ‘일류’라는 단어를 새롭게 추가했다. 5년 단골이던 ‘미래’ ‘위기’ ‘변화’는 모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