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다르다. 화장품 브랜드도 다르다. 그런데 양사 모두 모델은 배우 이영애 한 명이라고 했다. LG생활건강(이하 LG생건)과 배우 이영애의 남편이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천연 화장품 브랜드 '순식물성이영애화장품'이 기묘한 동행을 하고 있다. 이영애는 LG생건의 대표 럭셔리 브랜드인 '더 히스토리 오브 후(이하 후)'의 간판 모델로 활동하고 있으면서도 가족이 직접 관여하는 순식물성이영애화장품의 얼굴로 나서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업계는 이런 양사의 동행이 통상적이지 않고 브랜드 한 개당 모델 한 명 원칙을 지키고 있는 LG생건의 방침과 동떨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이영애 역시 LG생건에서 모델료를 받으면서 타 브랜드를 홍보하는 상도의에 벗어난 행보를 하고 있다.
LG생건 얼굴 이영애, 중소 업체 모델도
순식물성이영애화장품은 2013년 리아네이처라는 사명으로 출발한 화장품 회사다. '이영애가 직접 개발에 참여한 100% 천연유래성분 화장품'을 컨셉트로 삼은 리아네이처는 서울 삼청동에 플래그십스토어를 여는 등 의욕적으로 브랜드를 알려 왔다. 대만과 베트남 등 동남아 사업 진출이 무르익기 시작한 지난 3월부터 리아네이처의 브랜드 명칭을 '순식물성이영애화장품'으로 바꿨다. 동남아 지역에서 유명한 이영애의 이름을 브랜드명에 완전히 심어 넣으면서 순식물성이영애화장품의 색깔과 방향을 분명히 했다.
순식물성이영애화장품은 이영애와 피부전문가 홍성택씨가 의기투합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회사의 실질적 운영과 관리를 맡고 있는 사람은 이영애의 남편인 정호영씨다.
순식물성이영애화장품 관계자 역시 "우리 회사는 이영애씨의 남편분이 운영하는 곳이다. LG생건과는 다른 회사"라고 말했다.
문제는 순식물성이영애화장품 모델인 이영애가 현재 LG생건 매출의 일등공신인 후의 모델로 14년째 활약하고 있다는 점이다. 후는 2006년 이영애를 '여신'으로 내세운 뒤 중국 등지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일궜다. 지난해에는 후 단일 브랜드로만 1조4000억원을 벌어들이며 아모레퍼시픽을 제치고 국내 화장품 '대장주'로 올라섰다. LG생건에 후와 이영애는 곧 자존심이다.
그런데 LG생건이 이영애를 순식물성이영애화장품이라는 중소 업체와 '모델 나눠 쓰기'를 용인했다. 이는 브랜드당 모델 한 명 기용을 고수하는 LG생건 원칙과 다르고, 업계 1위 기업의 럭셔리 브랜드 마케팅에도 걸맞지 않다. 또 한 회사가 거느리고 있는 브랜드일지라도 모델을 겹쳐 쓰지 않는 업계 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이에 대해 순식물성이영애화장품 측은 "이영애씨가 이미 후를 상징하는 모델로 자리 잡은 상황이라 (LG생건에서) 이영애씨를 바꾸기 힘들었던 것으로 안다"며 "LG생건도 이영애씨가 순식물성이영애화장품의 모델로 활동하는 것에 대해 서로 이야기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모델 겹치기에 소비자 '헷갈리네'… "LG생건도 좋을 리 있겠나"
순식물성이영애화장품은 동남아 시장에서 입소문을 타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100% 식물 유래 성분을 쓰고, 방부제와 화학 성분을 쓰지 않는 점이 알려지면서 삼청동 플래그십스토어를 찾는 해외 관계자의 발길이 꾸준하다는 평가다. 2015년 베트남 진출을 시작으로 트렌드의 중심지인 홍콩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중국 사업 교두보를 가늠하고 있다.
순식물성이영애화장품이 잘나가자 입장이 난처해진 것은 LG생건이다. 상호 간 합의했다지만 결과적으로 이영애가 다른 브랜드 모델로 뛰면서 후의 색깔만 흐려질 우려가 생겼기 때문이다.
LG생건은 지난해 겨울 리아네이처가 발행한 신주 10만 주(약 16.6%)를 40억원에 사들였다. LG생건 측은 당시 "가능성을 가진 다양한 업체 지분을 매입하는 등 다각도로 사업 투자를 늘리고 있다. (순식물성이영애화장품 투자 역시) 여러 수단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 안팎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후의 차기 모델을 발굴하지 못한 LG생건이 이영애와 모델 관계를 이어 가기 위해 순식물성이영애화장품에 투자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에 대해 LG생건 관계자는 "후와 순식물성이영애화장품은 제품의 아이덴티티가 다르다. 후는 궁중 한방 화장품이고 상대는 천연식물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직접적 범주가 겹치지 않는다"며 "후의 오랜 모델인 이영애씨의 특수 관계인이 하는 회사로 일반적 경쟁사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이영애의 적극적인 순식물성이영애화장품 홍보는 상도의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영애는 지난해 9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쌍둥이 자녀와 남편 정호영씨와 함께한 사진을 게재하고 순식물성이영애화장품의 전신인 리아네이처를 쓴 뒤 해시태그를 달았다. SNS 홍보는 보통 모델이 자발적으로 한다. 또 순식물성이영애화장품 측은 이영애의 얼굴이 나온 사진을 언론사에 홍보물로 돌리면서 "이영애가 직접 만들고 쓰는 화장품"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후 입장에서는 불쾌할 수 있다.
향후 순식물성이영애화장품이 면세점에 입점된다면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혼동할 수도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같은 회사 내에서도 브랜드끼리 매출을 경쟁한다. LG생건 입장에서 이영애씨의 모델 겹치기가 좋을 리 있겠는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