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일가 ‘사익’ 도구로 전락한 대기업 ‘공익’법인
일간스포츠

입력 2018.07.02 07:00

[연합뉴스 제공]

대기업 총수 일가가 지배력 확대나 경영권 승계의 수단으로 공익법인을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겉으로는 자선·교육 분야 등 사회공헌 사업을 목적으로 공익법인을 설립했지만, 안에서는 총수 일가의 경영권을 다지기 위한 편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웃 돕는다더니… 뒤로는 총수 일가 지배력 확대에 계열사 지원까지

공정거래위원회는 1일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운영 실태 조사·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은 지난해 9월 1일 지정된 자산 5조원 이상 57개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 소속 비영리법인 중 증여세 등 감면 혜택을 받은 상속·증여세법상 공익법인 51개 집단 총 165개였다.

정부는 대기업 총수들이 재산을 출연해 사회공헌활동을 적극 장려하기 위해 공익법인에 주식을 증여할 때 최대 5% 지분까지 상속·증여세를 면제해 주는 이른바 ‘5% 룰’ 혜택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 혜택을 편법으로 활용해 공익법인이 갖고 있던 계열사 지분을 사고팔아 총수의 지배력을 확대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상당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삼성생명공익재단이 2016년 2월 삼성물산 주식 200만 주를 사들였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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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은 이를 통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집 합병 과정에서 불거진 신규 순환출자 문제를 해소했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에 대한 실질적인 지분율이 16.5%에서 17.2%로 상승, 총수의 지배력을 강화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공익법인은 다른 계열사를 ‘우회 지원’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이사장인 정석인하학원의 경우, 지난해 3월 대한항공의 재무 건전성 확보를 위한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당시 정석인하학원이 출자한 금액은 52억원이었다. 정석인하학원은 이 중 45억원을 한진의 다른 계열사로부터 현금으로 받아 충당했다. 그러나 증여세는 공익법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면제받았다.

정석인하학원의 행보에 이상한 점이 또 있다. 260만 주를 보유하고 있지만 대한항공으로부터 직전 5년간 배당받은 돈이 없었다. 순수하게 대한항공을 지원하기 위해 출자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공익 재단을 총수 일가 사익 편취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로 활용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이노션과 글로비스는 총수 일가 지분율이 각각 80.0%, 43.4%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었다. 하지만 현대차정몽구재단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지분을 일부 출연받으면서 이노션과 글로비스의 총수 일가 지분율은 일감 몰아주기 기준(30%)의 턱밑인 29.9%까지 낮아져 규제를 피했다.
 

"경영권 승계에 동원"… 통제 장치 마련해야

이번 조사에서 대기업 공익법인은 다른 일반 공익법인보다 계열사 주식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말 기준 대기업 공익법인의 자산 중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21.8%로 전체 공익법인(5.5%)의 4배에 달했다. 이 중 74.1%는 계열사 주식이었다. 대기업 공익법인 165개 중 66개(40%)가 총 119개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 공익법인 중 59개는 총수가 있는 대기업 소속이다.

특히 이들이 주식을 보유한 119개 계열사 중 57개 사(47.9%)는 총수 2세도 지분을 함께 보유한 ‘총수 2세 회사’여서 경영권 승계를 위한 수단이 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정작 공익법인은 주식을 보유한 계열사로부터 배당금을 크게 받지 않고 있어 공익사업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배당 금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공익법인 수입의 1%대에 불과했다. 

대기업 공익법인은 기업집단의 주력 회사 ·상장회사 ·자산 규모 1조원 이상 대형 기업의 주식도 집중적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계열사 주식을 보유한 66개 공익법인 중 2016년에 배당받은 법인은 35개(53%)에 불과했고, 평균 배당 금액은 14억1000만원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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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공익법인이 총수 일가 또는 계열사와 내부거래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빈번하나, 공익법인과 총수 관련자 간 내부거래에 대한 통제 장치는 미흡한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박용진 국회의원은 "이번 분석 결과는 대기업 공익법인들이 사실상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무늬만 공익법인임을 보여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공익법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공익법인의 자산으로 계열사 주식을 매입하거나 계열사와 거래하는 행위도 금지해야 한다"고 했다. 
 
권지예 기자 kwon.jiye@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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