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에서 속내를 드러내면 원하는 바를 취하기 어렵다. 그러나 롯데의 베테랑 타자와 투수는 단일 노선에서도 잔류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롯데는 스토브리그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행보를 보여줬다. 한화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주전감인 젊은 포수 지성준(25)을 영입했다. 2차 드래프트에서는 잠재력이 있는 외야수 최민재(25)를 선택했다. 새 외인 타자 딕슨 마차도, 투수 애드리안 샘슨도 기대감을 모으는 이력을 갖췄다. 18명을 방출하며 쇄신 각오를 드러냈고 연봉 협상도 조기에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현안인 내부 FA(프리에이전트) 협상은 진행형이다. 지난 네 시즌 동안 투·타 주축이던 전준우(33)와 손승락(37)이 대상이다.
전준우는 롯데 프랜차이즈 스타다. 데뷔 3년 차에 100경기를 소화했고, 이듬해인 2011시즌부터 주전으로 올라섰다. 경찰 야구단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뒤에는 기량이 크게 좋아졌다. 풀타임으로 나선 최근 세 시즌 모두 3할 타율을 넘겼고, 홈런은 73개를 쳤다. 올 시즌은 반발력이 저하된 공인구로 인해 리그 전체가 투고타저 추세였음에도 분전했다. 롯데 타자 가운데 가장 빼어난 성적을 남겼다. 지난 9일 열린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도 전체 5위에 해당하는 득표를 했다.
롯데는 2017시즌이 끝난 뒤 프랜차이즈 스타 강민호를 잡지 못했다. 여파가 이후 두 시즌에 영향을 미쳤다. 안방 전력은 저하됐고, 팬심(心)은 요동쳤다. 전준우의 잔류 여부도 그런 의미가 있다.
협상은 장기전이 전망된다. 지난주까지 한 차례밖에 만나지 않았다. 실속 있는 대화는 없던 것으로 전해졌다. FA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이다. 외부 영입으로 외야 보강을 노리는 팀도 드러나지 않았다. 대형 계약이 성사될 가능성은 작다.
선수와 에이전시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결국 선수의 그동안 자이언츠 구단에 헌신한 선수의 자존심을 세워 주는 선에서 합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 단장 체제는 수차례 만나 이견을 좁히는 방식, 통상적인 그것을 따르지 않을 전망이다. 성민규 단장이 강조하는 프로세스다. 몸값을 거론하는데 신중할 수 있다.
일단 선수는 롯데 잔류를 강하게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구단은 그가 1루수로 전향하길 바란다. 이대호가 지명타자로 고정되고, 채태인이 SK로 이적한 상황이다. 가장 화력이 강해야 하는 포지션에 전준우를 내세우겠다는 것.
선수는 마뜩잖다. FA 신청 자체를 외야수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부는 아니다. 전준우는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구단이 내 가치를 인정해주기 때문에 경기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고 했다. "포지션을 가려서 게임에 나갈 생각은 없다. 구단이 나에게 원하는 사항이 있다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겨우내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도 덧붙였다.
자존심을 지키는 것보다 롯데에 남아 팀 승리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는 게 먼저였다. 강한 잔류 의지라는 얘기다.
손승락을 향한 평가는 명확하다. 전성기 시절의 세이브 생산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필승조로는 제 몫을 해낼 수 있는 투수라는 것이다.
그는 롯데 유니폼을 입고 뛴 네 시즌(2016~2019년) 동안 94세이브를 기록했다. 세이브왕에 오른 2017시즌을 제외하면 기대에 못 미친 게 사실이다. 2019시즌에는 부진 탓에 마무리투수를 내주기도했다.
그러나 수 년째 투수진 리더로 젊은 투수들을 이끌었다. 항상 연구하는 자세로 인해 후배 투수와 포수에게 귀감이 됐다. 베테랑 투수 다수가 팀을 떠난 상황에서 구심점이 필요한 롯데 마운드다. 기량 경쟁력도 아직 노쇠화를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구위를 가늠할 수 있는 피안타율(0.264)이나 피장타율(0.356)은 롯데로 이적하기 직전인 2015시즌보다 더 낮다.
선수는 잔류 의지가 강하다. 손승락은 "내 가치를 인정해준 롯데와 성원을 보내준 롯데 팬과계속 함께하고 싶다. 롯데의 재도약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 2017시즌 후반기에 경험한 롯데 팬의 열기에 매료됐다. 전 소속팀 시절보다 화끈한 세레모니와제스처가 많아진 이유다. 손승락은 세계 최고의 야구팬들과 다시 한번 뜨거운 가을을 맞이하고 싶어 한다.
차기 시즌 손승락이 다시 마무리투수를 맡는다면, 돌아온 오승환(37·삼성)과 통산 최다 세이브를 두고 경쟁을 할 수 있다. 소속팀을 넘어 리그 전체에 흥행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