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는 3년 차던 고우석(22)이 슬라이더의 제구를 잡은 뒤 마무리투수로 거듭났고, 신인 정우영(21)도 시즌 초반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필승조에 안착했다. NC도 원종현(33)을 마무리로 내세운 이동욱 감독의 선택이 맞아떨어졌다. 배재환(25), 강윤구(30)가 전반기를 잘 버텨줬고, 지원군이 필요할 때는 선발이던 박진우(30)가 스윙맨으로 투입돼 임무를 해냈다.
다섯 시즌 연속 9, 10위에 머물던 KT도 시행착오와 변수를 겪으면서도 셋업맨 구성에 신중하게 접근했고, 5강을 노리는 팀으로 진화했다. SK도 서진용(28)과 김태훈(30)의 성장, 하재훈(30)의 클로저 안착 덕분에 전반기 내내 독주할 수 있었다.
2019시즌 상위 여섯 팀 모두 팀 세이브 1~6위에 포함됐다. 1, 2위 두산과 SK는 팀 홀드 개수도 2강을 형성했다. 공인구의 반발력 계수 저하로 투수 강세가 두드러졌고, 각 구단 1~2선발의 위력은 예년보다 떨어지지 않았다. 중·후반 싸움에서 승부가 갈리는 경기가 많았고, 강한 불펜진을 보유한 팀이 더 많은 승수를 챙겼다. 차기 시즌도 이러한 추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불펜투수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각 구단은 연봉 협상 과정에서 순풍을 예고했다. 실제로 두둑한 몸값은 안기며 불펜투수들의 가치를 인정했다. 2019 세이브왕 하재훈은 지난해 연봉 대비 1억2300만원이 인상된 1억5000만원을 받는다. KBO리그 역대 최고 인상률이다. 고우석도 인상률 254.8%를 기록하며 2억2000만원에 도장을 찍었다. KT 마무리투수 이대은(31)도 구단 최고 인상률(270%)을 기록하며 억대 연봉에 진입했고, 창단 최다 홀드(25개)를 기록한 주권(25)도 2배가 넘는 1억5000만원에 계약했다.
FA 시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화 마무리투수 정우람(35)이 기간 4년 동안 총액 39억원을 받는 계약으로 잔류했다. 30대 중반을 넘긴 투수에게 옵션조차 없이 거액을 보장했다. 꾸준한 기량을 증명한 선수의 이력도 있지만, 구단 내부에서 불펜투수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화는 2018시즌에 강한 불펜을 구축해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통산 111홀드를 기록한 진해수(34)도 2+1년·14억원에 FA 계약을 하고 LG에 잔류했다. 손승락(38), 정우람 등이 첫 이적을 한 2014~2015 스토브리그에서 불펜투수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2020 스토브리그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연봉은 지난 시즌 고과와 차기 시즌 기대감이 모두 반영된 결과다. 강한 불펜 구축에서 상위 팀 도약의 필수 조건으로 증명된 상황. 좋은 대우는 해당 선수뿐 아니라 다른 불펜투수에게도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