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돋보기] 20년 만에 등급제 도입한 FA 제도, 어떻게 변화해왔나
일간스포츠

입력 2020.01.22 10:52

배영은 기자
 
프리에이전트(FA) 제도는 1999년 KBO 리그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후 리그 전체에 많은 파장을 일으켰고, 여러 차례 변화의 과정도 거쳤다.  
 
제도 도입 초창기에는 선수들에게 새로운 '이적'과 '대박'의 길이 열렸다는 것만으로도 화제였다. 투수 송진우가 1999년 11월 원 소속팀 한화와 3년 총액 7억원에 사인하면서 역대 1호 FA 계약 선수로 기록됐는데, 당시 한화와 송진우 사이의 협상 과정과 내용이 매일 언론을 통해 생중계됐을 정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 소속구단 해태와 협상이 결렬된 언더핸드 투수 이강철이 3년 총액 8억원을 받기로 하고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다시 한 번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강철은 역대 1호 FA 이적 선수로 기록됐다.  
 
도입 첫 해인 1999년 FA를 신청하고 계약한 선수는 총 5명. 그들의 몸값 총액은 24억5000만원이었다. 야구 관계자들은 '천문학적 금액'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이렇게 돈을 쓰다가는 프로야구가 다 망한다"고 걱정했다는 후문이다. 1년 뒤 홈런 타자 김기태가 쌍방울에서 삼성으로 옮기면서 4년 18억원을 받자 걱정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그러나 리그는 망하는 일 없이 무사히 운영됐고, 선수들의 몸값은 오히려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점점 더 치솟았다.  
 
KBO와 구단들은 결국 2009년부터 FA 선수들의 다년 계약과 계약금 지급을 금지하기로 결의했다. 4년 계약을 한 선수가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을 때의 손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도 깔려 이었다. 여기에 'FA가 타 구단으로 이적할 때 전년도 연봉의 50%를 초과해 받을 수 없다'는 규정도 만들었다. 그 시기에 FA 자격을 얻은 선수들은 당연히 거세게 반발했다.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구단과 선수가 찾아낸 타협안이 바로 '이면 계약'이라는 꼼수였다. 실제로는 계약금이 포함된 4년짜리 계약을 해놓고 공식적으로는 연봉만 받는 단년 계약으로 발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다른 구단의 이면 계약을 비난하던 팀들도 정작 자신들이 급하면 FA 선수에게 서로 다른 내용이 적힌 두 장의 계약서를 내밀었다. 다년 계약 금지 조항이 FA 선수들의 몸값을 낮추기는커녕 더 나쁜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결국 이 규정은 2년 만에 사라졌다. 2011년에 FA 자격을 얻은 선수들부터 다시 다년 계약과 계약금 지급이 허용됐다. 그러나 이미 구단과 선수들은 이면 계약에 대한 죄책감을 없앤 뒤였다. 이후에도 꾸준히 발표 금액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의 이면 계약서에 사인한 선수들이 속속 나왔다. '공식적으로' FA 100억 시대를 연 선수는 삼성에서 KIA로 간 외야수 최형우로 기록돼 있지만, 그 벽이 실은 이미 수 년 전에 깨졌다는 게 야구계 정설이다.  
 
2016년엔 꾸준히 유지돼 오던 원 소속구단 우선 협상기간도 폐지됐다. 이전까지는 FA 시장이 열린 첫날부터 일주일간 원 소속구단과 계약을 우선 논의하고, 이때 계약이 성사되지 않으면 다시 일주일 동안 원 소속구단을 제외한 다른 팀들과 협상할 수 있었다. 이 기간이 모두 지난 뒤에야 비로소 원 소속팀과 다른 구단을 가리지 않고 모든 팀과 협상할 수 있는 진짜 FA의 문이 열렸다.  
 
하지만 우선협상기한 역시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던 상황이다. 탬퍼링(사전 접촉)은 야구 규약상 명백하게 금지돼 있지만, 매년 시즌이 끝나갈 때쯤엔 "어느 선수가 어느 구단과 이미 합의까지 마쳤다"는 소문이 떠돌곤 했다. 일부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현실이 된 얘기도 꽤 많았다. 구단들도 탬퍼링에 대한 경각심이 사라진 지 오래. 구체적인 계약 조건은 제시하지 않더라도, 시즌 중반 대어급 FA들에게 슬쩍 다가가 "지금 소속팀이 얼마를 부르든 무조건 그것보다는 많이 주겠다"는 얘기를 툭툭 던지는 구단 관계자들이 많았다.  
 
상황이 이러니 원 소속구단과의 협상 때 아예 선수가 구단의 제시액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일도 종종 생겼다. 협상 관계자들이 "협상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다"며 "아예 원 소속구단의 제시 조건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빨리 일주일이 지나 다른 팀과 계약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게 한눈에 보였다"고 푸념하기 일쑤였다.  
 
유명무실한 제도는 폐지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일부 구단은 "우선협상기한이 그나마 탬퍼링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며 반대했지만, 급변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또 2018시즌이 끝난 직후에는 선수들의 몸값 인플레이션을 막으려는 구단들이 'FA 4년 총액 80억원 상한제' 도입을 추진했다가 선수협의 강경한 반대와 부정적인 여론에 부딪혀 무산되는 일도 생겼다.  
 
FA 등급제 도입은 이후 FA 제도에 찾아온 가장 큰 변화이자 선수들의 오랜 숙원을 풀 수 있는 움직임이다. 특급 FA들의 몸값이 높아질수록 준척급 FA나 베테랑 FA들의 입지는 축소되는 양극화 현상이 점점 심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A급 FA가 아닌 선수들은 이전보다 자유롭게 다른 팀에서 기회를 노릴 수 있는 길이 열렸고, 구단들은 그리 비싸지 않은 몸값의 FA 선수들을 보상선수 출혈 부담 없이 영입할 수 있게 됐다.  
 
 
배영은 기자 
 
관련뉴스
I Hot
인기 VOD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