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을 던지는 재미를 되찾았다. 자신과의 싸움은 마쳤다. KT 선발 기대주 박세진(23)이 2020시즌을 기다리고 있다.
박세진은 2016 1차 지명 유망주다. 경북고 에이스였다. 친형 박세웅(25·롯데)이 프로 무대에서 두각을 드러내던 때였기에 더 주목받았다. 그러나 지난 시즌까지는 기대에 못 미쳤다. 벤치는 그의 재능을 끌어내기 위해 선발 기회도 줬다. 고교 시절 던지던 공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선수와 구단 모두 군 복무부터 마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마무리캠프에서 마지막 도전을 시작했다. 박세진이 직접 참가를 요청했고, 이강철 KT 감독이 수락했다. 모처럼 드러낸 투지를 주목했다고.
선수의 용기와 지도자의 결단은 최선의 결과로 이어졌다. 박세진은 한 달 사이에 선발 후보로 올라섰다. 박승민 투수 코치와의 교정 작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박 코치는 낮은 코스 제구에 애를 먹던 선수에게 하이볼을 주무기로 삼아도 위력이 있다고 조언했다. 공에 대한 확신을 준 것이다. 기술적인 변화도 있었다. 투구할 때 상·하체에 꼬임을 주기 시작했다. 무게 중심을 뒤에 잡아둔 뒤 투구를 한다. 힘을 더 싣기 위해서다.
이강철 감독은 마무리캠프 투수 우수 선수로 박세진을 선정했다. 그리고 차기 시즌 선발 후보로 낙점했다. 이 감독의 확신은 공이 아니라 기운이다. 어둡던 표정이 밝아졌다. "웃는 얼굴만 보인다"며 웃었다. 현재 투손(미국 애리조나주) 키노 스포츠콤플렉스에서 진행 중인 스프링캠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캠프 돌입 뒤 두 번째 불펜피칭을 마친 뒤 만난 박세진은 "빨리 실전 마운드에 오르고 싶다"며 당당한 바람을 전했다. 오버페이스 우려를 받고 있을 만큼몸 상태가 빨리 올라왔다. 그는 "현재 몸의 밸런스와 템포가 딱 좋고, 페이스를 늦추면 더 못 치고 올라갈 것 같다"고 설명했다. 컨디션 조절 여부를 떠나 전에 없던 저돌적인 자세는 기대감을 준다.
여느 유망주처럼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다스리지 못했다. 여러 지도자의 목소리를 듣다 보니 혼란도 있었다. 박세진은 "그때는 공을 던질 때마다 기분이 안 좋아졌다"고 돌아봤다. 재미가 있어서 시작한 야구가 싫어졌다.
1군 안착, 좋은 성적, 화려한 조명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저 고교 시절 던지던 공을 되찾고 싶었다. 짧지 않은 시간,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비로소 해냈다. 박세진은 "생각했던 투구 이미지와 점점 맞아가고 있다. 이제는 공을 던질 때마다 업이 된다"며 웃었다.
만족할 수 있는 공을 던져서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할 때가 가장 짜릿하다는 그는 "그동안은 나와 싸웠다. 이제는 타자와 싸울 수 있다"며 고무된 모습이다. 친형 박세웅과의 선발 대결은 흥행 카드가 될 수 있다. 예전에는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 지금은 "이길 수도 있을 것 같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주전 포수 장성우는 마무리캠프 직후 들린 박세진을 향한 이강철 감독의 극찬에 시큰둥했다. 그러나 스프링캠프 개막 뒤 직접 공을 받아보고 수긍했다고. 선발 보직을 대비해야 하는 박세진에게 투구 호흡에 대해 조언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박세진을 향한 기대치는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