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시즌 통합 우승을 이끈 김태형 두산 감독이 호주에서 진행된 1차 스프링캠프를 떠나기 전에 남긴 말이다. 지향점을 백업 전력 확보였고, 수년째 제 자리를 지킨 주전급 선수들에 대해서는 믿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베테랑 내야수 김재호(35)는 사령탑의 메시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리그에서 '화수분' 야구로 인정 받을 만큼 두꺼운 선수층을 보유 하고 있는 팀. 도태되면 자리를 잃는다는 순리를 에둘러 표현했다고 본다. 30대 중반을 넘어선 그는 소속팀 후배들을 경쟁 상대로 보고 있다. 자기 관리에 치밀하며, 경쟁에서 자만은 갖지 않는다.
지난 23일 일본 미야자키 2차 스프링캠프 출발을 앞두고 만난 김재호는 이전보다 살을 뺀 모습이었다. 원래 날렵한 체형이기에 티가 나진 않았지만, 최근 리그 선수들 사이에 경향으로 자리 잡은 몸 관리를 한 모습이었다.
김재호는 "예전보다 체중이 증가하면 감량에 애를 먹더라. 지난 시즌부터 관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수비만큼은 독보적인 기량을 갖춘 선수다. 그러나 하복부에 지방이 많아져서, 골반 회전이 더뎌질 수 있다는 경각심이 있었다. 그는 "젊은 선수들보다 몸을 만드는 게 더뎌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시즌 종료 뒤 나흘 정도 휴식을 취하고 바로 운동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배경이 있다. 두산은 리그에서 새 얼굴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팀이다. 화수분 야구라는 별칭이 생길 만큼 1군에 걸맞은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많다. 김재호도 전 주전 손시헌이 이적하기 전까지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도태되면 언제라도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경각심이 있다.
김재호는 "감독님이 주전 선수들을 향한 신뢰를 전하시지만, 그 의미를 주목한다면 얘기가 다르다. 긴장감을 잃고 몸을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언제대로 주전에서 밀릴 수 있다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수년째 두산의 주전 유격수로 뛰었고, 김태형 감독과도 다섯 시즌 동안 호흡을 맞췄다. 팀의 발전 방향, 사령탑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있다. 주전 선수들이 저하되지 않는 기량을 보여줘야, 젊은 선수들의 발전 의지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본다. 내실 있는 경쟁 체제가 일상처럼 이뤄지기 때문에 자리에서 밀린 선수도 불만을 갖기보다는 발전해야 한다는 동기 부여가 생긴다.
김재호는 이 점을 잘 알고 있기에, 리그 최고의 수비력을 갖춘 유격수라는 평가에도 고삐를 늦출 수가 없었다. 안그래도 부상으로 주축 내야수 허경민과 오재원이 2차 캠프 개막에 합류하지 못한 틈을 젊은 선수들이 주시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감지했다. 자신도 긴장감을 버리지 않는다.
2차 스프링캠프에서 진행되는 실전 경기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다. 1차 캠프에서 호주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가진 첫 실전 경기도 쾌조의 타격감을 보여줬다. 지난 시즌도 수비는 이름값을 증명했지만, 타격 지표는 아쉬움을 남겼다. 두 가지 지표를 모두 잡을 생각이다.
물론 개인 성과만 집착하지 않는다. 미야자키 캠프에서 진행되는 실전 6~8경기를 통해, 새 외인 투수 라울 알칸타라와 크리스 프렉센의구종별 타구 성향과 방향을 연구하고 대처할 생각이다.
소리 없이 강한 리그 최고의 내야수. 2020시즌을 앞두고는 독한 각오를 했다. '디펜딩 챔피언' 수식어에 연연하지 않고, 기본과 정도를 추구하며 자만 없이 두산의 내부 경쟁을 치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