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을 향하는 10구단에 가장 큰 화두는 뎁스 강화. 강제로 소화한 국내 3차 캠프는 무의미하지 않았다.
KBO 이사회가 정규리그 개막 날짜(5월 5일)를 확정한 21일을 전후로 현장에서는 144경기 체제를 고수하려는 움직임을 향해 유감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나왔다. 염경엽 SK 감독은 지난 20일, 글로벌 스포츠 콘텐트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흥행 배경을 사례로 전하며 경기의 질(質)이 한국 프로야구의 발전성을 좌우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의 생각도 비슷하다. 경기력 저하, 부상 빈도 증가를 우려했다.
◈'경기력 하락 우려하는 현장'
현장은 144경기 체제가 처음 도입된 2015시즌부터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아마 야구의 발전은 정체됐고, 프로 구단은 늘었다. 질적 향상이 동반될 수 없었다. 늘어난 경기 수 탓에 여력 안배가 필요했다. 매 경기 정예 자원을 투입할 수 없었다는 의미다. 승부가 기울면 1군에 어울리지 않는 선수들이 투입됐다.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고질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정 압박까지 받게 됐다. 코로나19 탓에 개막은 한 달 넘게 연기됐고, 우기(雨期)는 오지 않았다. 2020시즌은 더블헤더, 월요일 경기가 불가피하다. 체력 관리, 부상 예방이 어려워진다. 경기력으로 직결된다.
144경기 체제를 유지해야 스폰서십, 중계권 등 구단 수익에 타격을 받지 않는다. 현장도 안다. 그러나 좋은 경기를 선사해야 한다는 스포츠의 본질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는 감출 수 없었던 것.
KBO는 여지를 남겼다. 내부 확진자 발생 등 추가 변수로 인해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 경기 수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일단 144경기를 잡아둔 것. 이미 결정된 상황이기에 현장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김태형 감독도 "앞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며 이 상황 속에서 최선의 대응을 하려는 의지를 전했다.
◈'전화위복' 강제 청백전 시리즈
개막 한 달 만에 다가올 여름, 경험하지 못한 가을 정규시즌 경기. 전례 없는 변수가 많다. 2020시즌 최대 화두는 뎁스다. 매년 선수층이 두꺼운 팀이 좋은 성적을 내지만, 다가올 무대에서는 격차가 더 커질 전망이다. 특히 불펜진 활용과 관리가 매우 중요한 상황. 지도자들에게는 '내일' 과제가 아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정국 탓에 궁여지책으로 소화할 수밖에 없던 자체 청백전의 나날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리허설이 됐다. 각 팀 지도자들은 내부 전력을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한용덕 한화 감독은 "해외 전지훈련에서는 주로 1군 선수들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청백전을 통해 2군 선수들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준비할 수 있는 계기였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몇몇 젊은 선수들이 주전으로 도약할 수 있는 잠재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개막 초반에는 검증된 베테랑에게 기회가 먼저 가겠지만, 부진과 부상 등 이탈 변수가 생기면 쓰임새에 맞게 새 얼굴을 기용할 수 있다.
두산도 1군 전지훈련에 합류하지 못했던 1~3년 차 젊은 내야수들이 청백전을 통해 눈도장을 찍었다. 3년 차 권민석, 신인 박지훈 등 활력을 불어넣은 내야수가 많았다. 백업 순번도 3. 4순위까지 확보할 필요한 있는 시즌이다. 미래와 현재를 모두 대비할 수 있었다.
KT는 염두에만 뒀던 변화를 추구하기도 했다. 주축 타자 강백호의 1루수 전환을 시도했다. 사령탑 심중에는 있었지만 미국(애리조나) 캠프에서는 꺼내 들지 못한 카드다. 이강철 감독도 "지난 시즌 많이 던진 투수들의 컨디션 조절, 강백호의 1루수 시범 기용은 청백전을 통해 얻은 수확이다"고 전했다.
악재는 많고, 부담은 늘었다. 그러나 각 구단 1군 사령탑들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직접 눈으로 백업 전력을 확인했다. 지난 한 달이 남긴 유일한 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