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대로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책임이 뒤따른다는 자각도 있다. 롯데 선수단의 내부 분위기가 달라진 이유다.
롯데가 뜨겁다. 7년 만에 개막 5연승을 거뒀고, 시험대로 여겨졌던 '디펜딩챔피언' 두산과의 승부에서도 근성과 뒷심을 보여줬다. 예전에는 '기껏 추격해도 결국에는 지더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13일 열린 2차전에서는 세 차례 동점을 만들었고,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에서 끝내기 홈런을 치며 이겼다. 아직 연패가 없다.
잘 나가는 팀이다. 당연히 분위기가 좋다. 그러나 주장 민병헌(33)은 결과론으로 보지 않는다. 반대로 내부 기운이 달라졌기 때문에 승리라는 결과가 따라왔다고 생각한다. 시즌 초반에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를 꼽아 달라고 하자 그는 "선수들이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삼진을 당하면 '내가 못했다'는 생각보다는 '상대 투수가 잘했다'며 인정한다. 안 좋은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생각대로 행동하는데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는 분위기도 생겼다"고 덧붙였다.
부정적인 생각에 매몰되거나 주눅 들지 않도록 유도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얘기로 풀이된다. 선수 한 명의 플레이가 승부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야구는 팀 스포츠다. 그러나 개성과 자아를 먼저 존중한다. 유연한 분위기가 승부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롯데 더그아웃에서는 상대 팀의 멋진 플레이까지 손뼉 치는 모습이 나오고 있다. 허문회 감독이 강조하는 '즐기는 야구'와도 일맥상통한다.
스프링캠프부터 자율을 강조했다. 선수가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 수 있도록 외부 변수를 줄여주려고 했다. 공식 훈련은 3시간 정도였고, 나머지 시간은 개인에게 맡겼다. 2~3년 차 젊은 선수도 퇴근을 망설이지 않았다.
지난달에 열린 연습경기에서는 교체된 선수가 짐을 챙겨서 퇴근하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완벽한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 효율을 추구했다. 체력 안배 차원에서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된 선수는 애써 더그아웃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민병헌도 한때 허문회 표 자율 야구에 의구심이 있었다. 그는 "데뷔 15년 만에 처음 겪는 자율적인 분위기여서 생소했다. 처음에는 팀 연습량이 적어서 불안했고, '개막하면 우리 팀이 잘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달라진 기운을 체감하며 신임 감독이 제시한 방향성이 틀리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변화를 추진하는 조직은 구성원에게 긍정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겉만 그럴싸하게 바꾸고 속은 그대로라면 이내 동력이 소진된다. 자율 훈련은 이미 수년 전부터 트렌드가 됐다. 다른 팀도 비슷하다. 그러나 올 시즌 롯데의 행보는 독보적이다. 선수들에게 '이번에는 진짜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고 있다.
자율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민병헌도 "해이한 자세를 갖는다면 선수 본인의 책임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압적 지시가 없는 만큼 부족한 점이 있다면 선수 스스로 분석하고 다가서야 한다"라고도 덧붙였다.
감독이나 코치가 방치했다는 오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선수들은 존중받은 만큼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거나 퓨처스팀으로 강등돼도 납득할 수밖에 없다. 일단 시즌 초반에는 주어진 시간과 유연해진 생활 지침을 잘 활용한 선수가 더 많았다는 것이 결과로 증명됐다. 이 분위기가 지속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