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는 14일 잠실 LG전에 앞서 선수 네 명을 1군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외야수 고종욱과 김재현, 투수 이건욱과 김택형이다. 지난 13일 LG전에서 2-14로 크게 진 여파가 선수단 구성에 영향을 미쳤다.
참담한 경기였다. SK 외국인 선발 리카르도 핀토가 3회까지 10실점했다. 개막 전부터 '멘털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핀토다. 자체 청백전과 연습경기 기간에 작은 변수에도 쉽게 제구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걱정을 샀다. 수비 실책이 실점으로 이어지는 일이 가장 잦았다.
구위 자체는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SK는 핀토를 믿고 2선발로 기용했다. 시즌 첫 등판인 지난 6일 인천 한화전에선 6⅔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뒤 염경엽 SK 감독은 "이날은 좋은 피칭을 했지만, 시즌을 치르면서 기복을 보일 수 있다"고 했다.
그 우려가 사실로 드러났다. 1회 1점을 내준 핀토는 2회 1사 만루서 희생플라이로 한 점을 잃은 뒤 다시 이천웅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해 2사 만루에 몰렸다. 다행히 후속 타자 김현수를 2루수 땅볼로 유도하면서 실점을 최소화하는 듯했다. 바로 이때 SK 2년차 2루수 김창평이 타구를 더듬는 실책을 해 주자를 모두 살려줬다. 3루 주자가 홈을 밟았고 다시 2사 만루 위기가 이어졌다.
핀토는 그 순간부터 무너졌다. 후속 타자 채은성의 높게 뜬 타구가 빗맞은 안타로 연결되자 평정심을 잃었고, 로베르토 라모스와 김민성에게 연속 볼넷을 허용해 밀어내기로 추가 실점을 했다. 계속된 2사 만루에서는 박용택에게 우중간을 가르는 싹쓸이 적시 2루타를 얻어 맞았다. 2회에만 8실점. 그러나 야수 실책 이후 허용한 7점은 모두 비자책점으로 기록됐다. 청백전 기간 기록한 23실점 가운데 자책점은 단 12점에 불과했던 핀토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했다.
핀토는 3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1점을 더 줬고, 5회 투아웃까지 잡아낸 뒤 이건욱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4⅔이닝 7피안타 4볼넷 1탈삼진 10실점 3자책점. 결정적인 실책 그리고 그 실수 하나에 와르르 무너진 선발 투수. SK로선 이길 도리가 없는 경기였다.
문제는 이후에도 경기가 내내 매끄럽지 않게 흘렀다는 점이다. 올해 필승조로 분류됐던 불펜 김택형은 8회 마운드에 올랐다가 볼넷, 적시 2루타, 좌중간 안타, 적시 2루타를 연이어 맞았다. 이 과정에서 우익수 김재현이 어정쩡한 슬라이딩 캐치를 시도하다 공이 글러브에 맞고 튕겨 나가 더 큰 위기를 자초하기도 했다.
결국 김택형은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한 채 주자를 2루와 3루에 남겨 놓고 교체됐고, 다음 투수 조영우가 남은 주자 두 명까지 모두 불러 들여 4실점을 기록하게 됐다. 김택형과 김재현이 2군행 통보를 받은 이유다.
물론 단 한 경기의 부진이 전부는 아니다. SK는 13일까지 단 1승을 거두는 데 그쳤다. 6일 한화전 승리 이후 5연패. 13일 김창평의 실책이 패전의 빌미를 제공했다면, 12일엔 김성현이 치명적인 실책으로 팀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야심차게 재편한 센터 라인은 아직 충분히 제 자리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12일 경기에선 믿었던 외국인 에이스 닉 킹엄마저 3⅔이닝 8실점으로 대량 실점했다. 시즌 개막전에서 보여 준 믿음직스러운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지난해 필승 셋업맨으로 자리 잡은 서진용은 지난 8일과 10일 롯데전에서 연이어 홈런을 맞았고, 마무리 투수 하재훈도 아직 100%의 컨디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전 포수 이재원이 지난 7일 한화전에서 투수의 공에 맞아 오른 엄지손가락 골절로 이탈한 것이 가장 큰 악재다. 13일 경기에서도 이재원의 공백이 여실히 드러났다.
결국 SK 입장에선 최정, 제이미 로맥, 박종훈, 문승원과 같은 '기둥' 선수들의 활약에 더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정은 13일 경기에서 0-10으로 승부가 크게 기운 4회 1사 후 팀의 첫 안타를 치고 1루에 나간 뒤 기습적으로 2루 도루를 시도했다. 곧바로 로맥의 좌전 안타가 이어지면서 이 도루는 SK가 첫 득점을 올리는 발판이 됐다.
로맥 역시 사실상 승부가 결정된 경기 후반에도 두 차례 몸을 날려 1루 강습 타구를 잡아내는 허슬플레이로 다른 선수들의 귀감이 됐다. 잔뜩 가라 앉은 팀 분위기에 힘을 불어 넣으려는 베테랑 선수들의 마지막 투지다. SK가 '강팀 DNA'를 살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바로 이런 장면에서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