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신인 투수 이민호(19)의 '5이닝' 투구는 류중일(57) 감독의 야구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신인왕 후보 이민호는 지난달 3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KT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5이닝 동안 116구를 던졌고, 5피안타·5볼넷을 기록하며 고전했다. 실점은 1점. 4회까지도 투구 수가 많았다. 동안 2사 뒤 볼넷과 내야 안타, 폭투를 내주며 1점을 허용했다. 박경수에게 내준 내야 안타는 뜬공을 야수들이 서로 미루다가 잡지 못해 내준 기록이다.
이 상황 뒤 스코어는 2-1이 됐다. 류중일 감독은 투수를 바꾸지 않았다. 이민호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8번 타자 장성우를 삼진 처리하며 위기를 넘겼고, 승리투수 요건을 채웠다. 이후 불펜진이 동점을 내주며 시즌 3승은 얻지 못했지만, 임무를 완수하며 신인왕 레이스에서 독주 체제를 갖췄다.
박빙 승부였고, 이민호의 투구 수는 100개를 넘었다. 투수 교체도 선택지였다. 류중일 감독에게 "이민호의 강판은 고려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나는 이기고 있을 때 선발투수를 5회 이전에 내리지 않는 편이다"고 말했다. "선발투수는 이닝을 스스로 마치고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덕분에 이민호는 선발 등판한 다섯 경기에서 모두 5이닝을 채울 수 있었다.
기억을 더듬은 류 감독은 "그런 상황에서 투수를 내린 적은 한 번 정도였다"고 했다. 삼성 사령탑 시절인 2012년 6월 8일 SK전이다. 선발투수던 윤성환(삼성)이 갑자기 허리 통증이 생긴 탓에 베테랑 불펜 투수던 정현욱 현 삼성 투수 코치를 첫 번째 투수로 내세웠다. 삼성은 1-0으로 앞섰고, 정현욱은 4회까지 무실점을 이어갔다.
그러나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연속 안타와 볼넷을 내주며 만루 기회에 몰렸다. 류 감독은 이 상황에서 우완 이우선(은퇴)을 내세웠지만, 당시 SK 4번 타자던 이호준 현 NC 타격 코치에게 만루 홈런을 허용했다.
이 기억 탓에 선발투수의 교체 방침을 바꾼 건 아니다. 이전에도 이닝을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올 수 있도록 유도했다. 승부처로 보기 힘든 경기 중반,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선발투수의 의욕을 꺾는 선택을 피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 5회에 등판하는 불펜투수가 누상이 채워진 상태에서 효과적인 투구를 하기 어렵다고 봤을 수도 있다. 어쨌든 '야통' 류중일 감독은 이런 상황에서의 교체를 지양한다.
덕분에 이민호는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신인 투수가 선발로 나선 첫 다섯 경기에서 모두 5이닝 이상 소화했다. 신인왕 레이스 경쟁자인 KT 소형준이 지난달 3일 수원 두산전에서 해내며 주목받은 기록이다. 이민호는 이 등판을 마친 이튿날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선수 관리 차원이다. 홀가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됐다.
교훈도 얻었다. 대량 실점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타선이 득점을 지원해 리드를 안겼다면, 사령탑은 5회까지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말이다.
류중일 감독은 이민호의 이 경기 등판에 대해서 "수비가 실수한 뒤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공을 던진 것을 성숙한 투구였다. 안 줘도 될 점수를 줘서 아쉽다"고 했다. 투구 외 변수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면서 크는 것이다"며 말이다.
100구를 넘긴 상황에서 1점을 리드하고 있는 5회. 다시 같은 상황이 오면 이민호는 더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