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관중이 처음 입장한 날. 침묵을 거듭하던 박병호(34·키움)의 배트가 매섭게 돌았다.
키움은 26일 열린 롯데전부터 홈 관중을 받았다. KBO 리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5월 5일 개막 후 줄곧 무관중으로 치러졌다. 하지만 이날부터 '야구장 수용 가능 인원의 10% 이내'라는 조건 속에 관중 입장이 시작됐다. 고척 스카이돔에도 1742명이 찾아와 경기를 지켜봤다. 5번 1루수로 선발 출전한 박병호는 4타수 3안타 3타점을 몰아치며 8-1 대승을 이끌었다.
어렵게 만든 터닝 포인트다. 박병호는 지난 13일부터 25일 롯데전까지 최근 10경기 타율이 0.143(35타수 5안타)에 불과했다. 이 기간 39타석에서 삼진을 무려 17개나 쏟아냈다. 트레이드마크인 홈런은 단 하나에 그쳤다. 타석에서 대처가 되지 않으면서 모든 지표가 곤두박질쳤다. 출루율(0.231)과 장타율(0.229) 모두 형편없었다. 17일 인천 SK전부터 6경기 연속 경기마다 삼진 2개 이상을 꼬박꼬박 적립하기도 했다. 경기를 치를수록 타율이 떨어지고 삼진만 쌓이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리그 삼진 1위. 키움 중심타선은 그만큼 위력을 잃었다.
감독의 고민도 깊었다. 손혁 키움 감독은 지난 21일 두산전에 앞서 "(박)병호가 안 좋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최대한 병호에 관해선 얘길 하지 않으려고 한다. 본인도 팀의 4번을 맡고 있어서 (책임감 때문에) 더그아웃에서 밝게 얘기하고 그런다. 좋아지려고 노력 중이다"고 힘을 실어줬다. 최대한 엔트리 변동 없이 반등을 기다렸다. 그러나 변화 조짐이 없었다. 4번 타순에서 박병호가 부진하니 3번 타순에서 맹타를 휘두르는 이정후의 활약도 크게 반감됐다. 결국 박병호는 지난 주말 롯데와 홈 3연전에서 4번이 아닌 5번 타순에서 경기를 소화했다. 부진이 길어질 경우 1군 엔트리 '생존'도 장담하기 힘들었다.
벼랑 끝에 몰렸던 중심 타자는 관중들 앞에서 살아났다. 박병호는 26일 경기 후 꽤 의미있는 말을 내뱉었다. 그는 "집중력이 그전과 다른 경기였던 것 같다"며 "분위기가 달랐다. 집중하겠다고 했지만 (관중이 없을 때는) 연습 경기하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홈팬들 앞에서 좋은 플레이를 했을 때 다 같이 기뻐해 주고 그런 힘을 무시 못 하는 것 같다"고 했다. 큰 경기를 많이 치러본 박병호는 팬들의 현장 응원이 익숙하다. 신인이나 경험이 적은 선수들은 갑작스러운 관중 입장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박병호는 24일 만에 한 경기 3안타를 몰아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타격 지표는 여전히 하위권이다. 박병호는 26일까지 시즌 타율이 0.235(230타석 54안타)로 규정 타석을 채운 54명 중 53위다. KT 심우준(0.223)만 간신히 앞섰다. 장타율도 29위로 이름값에 걸맞지 않다. 그러나 롯데전 활약에서 알 수 있듯이 몰아치기 능력을 갖췄다. 긴 기다림 끝에 시작된 관중 입장이 타격감을 살리는 도화선 역할을 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모처럼 3안타를 기록한 그의 다음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