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한 줄 알았더니...행운의 사나이였던 김광현
일간스포츠

입력 2020.09.02 16:01

불운한 김광현(32·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인 줄 알았더니 '행운의 사나이'였다. 
 
김광현은 지난 2014년 메이저리그(MLB) 진출에 실패하고, 6년 만에 우여곡절 끝에 빅리그 입성에 성공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 3월 MLB 일정이 중단되면서 4개월 동안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미국에서 홀로 훈련했다. 안 풀려도 이렇게 안 풀릴 수가 없었다. 
 
 
세인트루이스 선발투수 김광현. [AP=연합뉴스]

세인트루이스 선발투수 김광현. [AP=연합뉴스]

김광현이 불운한 날들은 잘 견뎠더니 이제 행운의 날이 온 것 같다. 지난 7월 24일(한국시간) MLB 정규리그가 시작된 후, 점점 운이 풀리고 있다. 2일 신시내티 레즈와 원정 경기에서는 팀 타선이 23안타를 기록하면서 16-2로 대승을 거둬 가볍게 2승을 챙겼다. 선발로 나온 김광현은 5이닝 동안 3안타와 볼넷 2개만 내주고 무실점으로 역투했다. 삼진은 4개나 잡았다. 김광현의 시즌 평균자책점은 1.08에서 0.83으로 더욱 낮아졌다. 그리고 지난달 23일 신시내티전 1회부터 이날까지 17이닝 비자책 행진도 이어가고 있다.
 
김광현의 슬라이더가 유독 빛났다. 좌타자에게는 바깥쪽으로 흐르는, 우타자에게는 몸쪽으로 파고드는 슬라이더를 던졌다. 이날 투구 수 85개 중 28개의 슬라이더를 던져 19개의 헛스윙을 끌어냈다. 삼진 4개의 결정구도 물론 슬라이더였다. 김선우 해설위원은 "김광현이 필살기인 몸쪽 슬라이더 활용을 아주 잘했다. MLB 적응을 마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칭찬했다. 지난 18일 시카고 컵스전에서 훈련용 모자를 쓰고 나올 정도로 긴장했던 모습은 사라졌다. SK 와이번스 시절 그라운드의 사령관으로 활약했던 것처럼, 마운드에서 야수들을 향해 박수를 치며 칭찬하고 격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광현이 개막 한 달 만에 MLB에 적응한 것은 대진운이 작용했다. 송재우 해설위원은 "김광현이 정규리그에서 만난 피츠버그 파이리츠, 신시내티 레즈 등은 약팀이다. 타격이 뛰어나지 않은 팀이라서 김광현이 위기에 몰려도 잘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감이 올라왔고, 가지고 있는 실력을 극대화해서 발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5경기에 나온 김광현은 총 3팀과 대결했다. 가장 강팀은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1위 시카고 컵스(21승 14패·승률 0.600)였다. 같은 지구에 있는 신시내티는 4위(15승 21패·승률 0.417), 피츠버그는 5위(10승 23패·0.303)다. 신시내티와 피츠버그는 팀 타율이 0.217로 MLB 30개 팀 중 27위다. 선발 로테이션 예상대로라면 앞으로 만날 팀도 무난한 것으로 보인다. 
 
송 해설위원은 "코로나19로 인해 팀당 60경기 초미니 시즌이 치러지면서 특정 몇 개 팀과 대결하게 됐다. MLB 데뷔 시즌에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김광현에게는 오히려 유리한 상황이 됐다"고 전했다. 김광현도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다. 영어로 표현하면 '갓 블레스 미(God Bless Me)'"라고 말했다. 
 
 
2일 신시내티전에서 역투하고 있는 김광현. [로이터=연합뉴스]

2일 신시내티전에서 역투하고 있는 김광현. [로이터=연합뉴스]

김광현의 신인상 가능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김광현은 선발 4차례 등판에서 평균자책점 0.44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1913년 평균자책점이 공식 기록으로 인정된 이후 좌완 선발 투수의 데뷔전부터 4경기 평균자책점 역대 기록 2위에 해당한다. 1위는 1981년 LA 다저스에서 뛰던 페르난도 발렌수엘라가 기록한 0.25다. 올 시즌 20이닝 이상 던진 전체 신인 투수 중 평균자책점 1위도 달리고 있다. 김광현과 함께 평균자책점 0점대를 기록하고 있는 신인급 투수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필립스 밸디즈(1승 평균자책점 0.86)뿐이다.
 
현지 기자들도 김광현의 신인상 수상에 불을 지피고 있다. MLB 칼럼니스트 제프 존스은 소셜미디어(SNS)에 "김광현은 내셔널리그 신인상을 차지할 만하다"고 했다. 세인트루이스 지역 방송사 KSDK의 코리 밀러 기자도 SNS에 "이미 시작했는지 모르겠는데, 이제는 김광현의 내셔널리그 신인상 수상 논의를 시작할 때"라는 글을 올렸다. 
 
김광현은 KBO리그에서 최우수선수(MVP), 골든글러브 등 다양한 상을 받았지만 신인상은 받지 못했다. 데뷔 시즌이었던 2007년 정규리그에선 3승 7패, 평균자책점 3.62로 기대만큼 활약하지 못했다. 김광현이 MLB에서 신인상을 받는다면 한국 선수 최초다. 김광현은 "신인상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저 '내가 등판하면 이길 수 있다'는 공식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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