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우의 포커스 MLB] 메이저리그의 '원 트릭 포니'
일간스포츠

입력 2020.09.03 06:00

배중현 기자
 
미국에서 사용하는 표현 중에 '원 트릭 포니(One Trick Pony)'라는 게 있다. 전설적인 포크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 멤버 폴 사이먼이 1980년 솔로 앨범 타이틀로 동명의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원 트릭 포니'는 서커스단에서 재주부리는 말이 오직 한 가지 재주밖에 없어 다른 볼거리를 주지 못한다는 의미다. 사전적으로는 '잘하는 게 한 가지뿐인 사람'을 뜻한다.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메이저리그(MLB)에서도 '원 트릭 포니'에 가까운 케이스가 꽤 있다.
 
대표적인 선수가 조이 갈로(27·텍사스)이다. 2015년 MLB에 데뷔한 갈로는 통산(6년) 타율이 0.210으로 낮다. 올 시즌에는 31경기에 출전해 타율 0.183를 기록했다. 정확도에 큰 문제가 있다. 통산 삼진율도 37.7%로 꽤 높다. 그런데 장타력이 엄청나다. 2017년과 2018년 무려 40홈런 고지를 밟았다. 통산 장타율이 0.509로 통산 타율보다 3할 가까이 높다. 그의 '원 트릭'인 홈런은 통산 117개. 통산 447경기에 출전했다는 걸 고려하면 경기 출전 대비 홈런 수치도 상당하다. 공갈포에 가깝지만 확실한 매력 한 가지는 있는 셈이다.
 
지난 2014년부터 4년 연속 50도루를 기록한 빌리 해밀턴

지난 2014년부터 4년 연속 50도루를 기록한 빌리 해밀턴

 
빌리 해밀턴(30·뉴욕 메츠)이나 제로드 다이슨(36·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원 트릭'은 스피드다. 올해 MLB 8년 차에 접어든 해밀턴은 신시내티 시절 추신수의 후계자로 1번 타자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안착에 실패했다. 테이블 세터에 적합한 유형이 아니다. 통산 타율이 0.241, 통산 출루율은 0.295로 3할이 되지 않는다. 2014년부터 4년 연속 도루 50개 이상을 성공시켰지만 '발만 빠른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MLB 11년 차 다이슨도 마찬가지다. 다이슨은 해밀턴보다 약간 높은 통산 타율(0.245)과 출루율(0.317)을 기록 중이지만 대주자, 대수비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캔자스시티, 시애틀, 애리조나, 피츠버그 등을 거치면서 저니맨으로 전락했다. 확실한 '원 트릭'이 있지만 활용하는 게 쉽지 않다.
 
투수 중에선 알렉스 클라우디오(28·밀워키)를 꼽을 수 있다. 2014년 MLB에 데뷔한 클라우디오의 '원 트릭'은 투구 폼이다. MLB에 흔치 않은 왼손 사이드암이다. 통산 왼손 타자 피안타율이 0.202로 낮은 것도 투구 폼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결과다. 그런데 통산 오른손 타자 피안타율은 0.306으로 꽤 높다. 왼손 타자 상대 강점을 살려 MLB에서 롱런하고 있지만 그만큼 약점도 뚜렷한 흥미로운 투수다.
 
MLB 불펜 투수 중에선 구종이 '원 트릭'인 선수도 꽤 있다. 확실한 변화구 하나로 타자를 상대한다. 앤드류 밀러(35·세인트루이스)의 슬라이더, 잭 브리튼(33·뉴욕 양키스)의 싱커, 켄리 젠슨(33·LA 다저스)의 컷 패스트볼이 대표적이다. 짧은 이닝을 소화하는 불펜 투수들은 '원 트릭'의 숙련도에 따라 각기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
 
선발 투수는 얘기가 약간 다르다. 한 경기에서 최소 같은 타자를 2~3번 상대해야 한다. 불펜 투수처럼 구종이 단순하면 이닝을 소화하는 게 쉽지 않다. 과거 놀란 라이언의 속구와 커브, 랜디 존슨의 속구와 슬라이더 같은 '절대 마구'를 갖춘 투수라면 다르겠지만 대부분 여러 구종을 섞는다. 그렇다고 '원 트릭'이 필요 없는 건 아니다. 상대 타자가 '저 투수가 어떤 구종을 잘 구사한다'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이를 역이용하면 경기를 풀어나가기 쉬워진다.
 
 
최근 선발로 연착륙한 김광현(32·세인트루이스)에게 이 모습이 보인다. KBO리그에서 김광현은 리그 정상급 구속과 구위를 자랑했다. 김광현하면 떠오르는 구종은 슬라이더다. 그의 '원 트릭'에 가깝다. 하지만 MLB에선 슬라이더에 의존하지 않고 커브(12%)와 체인지업(10%)을 섞어 볼 배합을 하고 있다. 특히 슬라이더는 시속 78마일(125.5㎞)부터 85마일(136.8㎞)까지 구속 조절을 자유자재로 해 타자의 노림수를 잘 극복한다. 마치 류현진(33·토론토)의 주무기가 체인지업이지만 컷 패스트볼과 커브를 적절한 타이밍에 구사해 타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장면과 오버랩 된다.
 
'원 트릭 포니'는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가진 재능을 잘 활용할 수만 있다면 '원 트릭'이 아닌 다재다능한 '포니'가 될 수도 있다.
 
송재우 MBC SPORTS+ 해설위원

정리=배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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