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여자부 GS칼텍스와 흥국생명의 경기는 치열했다. 5세트까지 듀스 접전이었다. 이 경기 TV 중계시청률은 1.99%. 지난해 평균(1.05%)의 거의 두 배였다.
경기 내용보다 더 화제가 된 건 경기 외적인 부분이었다. 블로킹에 가로막힌 흥국생명 김연경이 네트를 잡아당기는 등 언짢은 감정을 드러냈다. 차상현 GS칼텍스 감독은 즉각 “경고를 해야 한다”고 심판에게 항의했다. GS칼텍스 주장 이소영도 같은 지적을 했다. 김연경은 2세트에서도 공을 코트 바닥에 내리쳐 구두 경고를 받았다. 김연경은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를 장식했다.
이틀 뒤인 13일 남자부 KB손해보험과 OK금융그룹의 경기도 뜨거웠다. 논란의 발단은 KB손해보험 노우모리 케이타의 세리머니였다. OK금융그룹 선수들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은 비(非)신사적 행동이라고 항의했다. 상대를 등지고 세리머니 하는 ‘불문율’을 어겼다는 것이다. 심판은 구두로 주의를 줬다.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OK금융그룹 최홍석이 득점 후 세리머니 대신 상대 코트를 응시했다. 이어 KB손해보험 황택의도 블로킹 성공 후 역시 상대 코트를 지켜봤다. 흥분한 양 팀 선수들은 경기 후 서로 비난을 이어갔고, 양 팀 감독이 나서서 말려야 할 정도였다.
15일 남자부 한국전력-대한항공전에서도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이탈리아 출신 로베르토 산틸리 대한항공 감독이 상대 선수를 향해 삿대질하며 “입 다물라(You have to shut up)”고 외쳤다. 이 장면은 중계를 통해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전달됐다. 이에 장병철 한국전력 감독도 목소리를 높였고, 두 감독 모두 옐로카드를 받았다.
산틸리 감독이 문제 삼은 건 한국전력 리베로 오재성의 세리머니였다. 산틸리 감독은 “상대를 조롱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장병철 감독은 “상대를 자극하려고 한 게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급기야 16일 심판과 감독을 모아 간담회를 했다.
배구는 네트를 가운데 두고 경기한다. 경기 도중 흥분해도 상대와 부딪힐 일이 없다. 야구의 벤치클리어링 같은 충돌이 드물다. 앞서 지목한 세 상황에서도 고성만 오갔을 뿐,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경기의 일부로 치부하고 넘길 수도 있다.
상대 팀이든, 팬이든, 누군가 기분이 상했다는 얘기가 전혀 다르다. 용인할 수 있는 수위를 넘었다고 봐야 한다. 세리머니는 기쁨을 표현하고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거다. 상대를 도발하는 게 아니어야 한다. 최근 삼성화재 김형진이 KB손해보험 공격을 가로막은 뒤 상대의 전매 세리머니(케이타의 손바닥 펼쳐 흔들기)를 흉내 냈다. 그런 식으로 재치있게 대응하면 된다.
열정이 경기를 그르치는 일은 흔하다. 만약 김연경이 당시 레드카드를 받았다면 1실점 하게 되고, 경기는 흥국생명 패배로 끝났을 거다. 때론 열정보다 냉정이 선수 본인과 팀을 위해 더 좋다. 감독 간 설전도 마찬가지다. 기 싸움도 중요하지만, 팬부터 생각해야 한다. 경기와 흐름이 끊기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