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33·토론토)은 8일 서울 플라자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20 조아제약 프로야구 대상' 시상식에 특별상 수상자로 참가했다. 지난겨울 LA 다저스를 떠나 토론토로 이적한 그는 단축시즌으로 열린 올해 평균자책점 2.69(5승2패)를 기록, 메이저리그(MLB)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후보(최종 3위)에 올랐다.
류현진은 시즌을 마치고 집에서 쉬며 KBO리그 포스트시즌을 봤다. 포스트시즌이 끝나자 그에게 식사를 청하는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고 한다. 특히 MLB를 꿈꾸는 이들에게 류현진과의 식사는 큰 기회이자 영광이다.
류현진은 이날 취재진으로부터 "MLB를 꿈꾸는 선수들에게 조언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얼마 전 김하성(25·키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밥 사주세요'라고 하더라"며 웃었다.
김하성은 류현진이 MLB로 떠난 다음 시즌인 2014년 KBO리그에 데뷔했다. 둘이 친분을 쌓을 기회가 거의 없었지만, 김하성은 용감하게 '류현진 식사권'을 청했다. 선배는 흔쾌히 후배에게 밥을 샀다. 류현진은 취재진에게 "김하성은 공격·수비·주루가 다 되는 선수이기 때문에 (MLB에서도)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덕담했다.
둘이 만나서는 더 깊은 대화를 나눴을 것이다. 류현진은 "김하성이 가고 싶은 팀을 정한 건 아직 아닌 것 같더라. (토론토로 올 수 있다는 전망에 대해) 한국 선수와 한 팀에서 뛰면 너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터뷰가 나가자 외신들도 두 선수의 식사에 주목했다. 캐나다 매체인 TSN은 "토론토가 김하성에게 눈독을 들이는 건 분명하다. 다만 김하성이 영입 최우선 후보인지, 최우선 후보와 계약하지 못했을 때를 대비한 후보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9일(한국시간) 전했다. 이와 관련해 조 시핸 토론토 구단 부단장은 "김하성이 KBO리그에서 남긴 성적은 무척 대단하다. MLB 내야수 시장에서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류현진은 조만간 미국으로 출국 예정인 나성범(31·NC)과도 식사 약속을 잡았다. 나성범도 MLB가 주목하는 외야수. 김하성과 마찬가지로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빅리그 진출을 꿈꾸고 있다.
국내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류현진은 "내가 (2013년 MLB로) 갔을 때와 달리 지금은 포스팅 제도가 바뀌었다. 모든 구단과 협상할 수 있는 만큼 자신에게 가장 맞는 팀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MLB에서도 초일류로 통하는 류현진이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많다. 그래서 '류현진 식사권'이 인기다.
류현진은 지난 겨울에도 김광현(32·세인트루이스)과 붙어 다녔다. 1년 전 MLB 진출을 준비했던 김광현에게 류현진만한 멘토가 없었다. 류현진은 "올해 귀국해서도 김광현을 몇 번 만났다"고 했다.
때로는 한 끼 식사가 측정할 수 없는 가치를 만들기도 한다. 미국의 전설적인 투자자 워렌 버핏과 점심을 먹으며 그의 지혜를 듣는 '버핏과의 식사권'은 유명한 자선 경매가 됐다. 지난해 이 경매의 낙찰가는 450만 달러(49억원)였다.
예비 빅리거들에게 류현진과의 식사는 천금 같은 기회다. 버핏처럼 경제 정보와 통찰을 주는 건 아니지만, 류현진은 MLB에서 직접 겪은 8년의 경험을 전한다. 밥도 류현진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