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은 도전자를 비웃는다.”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53)가 선수 말년에 했다고 알려진 말이다. 사실 발언의 출처는 불분명하다. 지금은 이 말이 주위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전하는 이를 위한 찬사로 쓰인다. 이 표현을 불러낸 건 KIA 타이거즈 투수 양현종(33)이다.
자유계약선수(FA)가 된 양현종은 메이저리그(MLB) 진출을 선언했다. 원소속팀 KIA 외에도 관심을 보인 구단이 있었지만, 양현종의 결심은 굳건했다. MLB를 우선으로 추진하되, 지난달 20일까지 결정되지 않으면 KIA에 남기로 했다. KIA도 에이스를 예우하기로 내부적으로 정했다.
양현종 측이 날짜를 못 박은 건 미국 FA시장이 예년과 같은 속도로 진행될 거라 예상해서였다. 하지만 코로나19로 FA시장이 얼어붙었다. 투수 최대어 트레버 바우어조차 아직 행선지를 정하지 못했다. 양현종은 KIA 측에 양해를 구하고 결정일을 열흘 더 미뤘다. 전지훈련이 2월부터라서 KIA도 받아들였다.
양현종은 지난달 30일 조계현 단장을 만나 “미국행 도전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전했다. 어느 팀과도 계약하지 못했고, 구체적으로 진행 중인 협상도 없다. 도전을 위해 퇴로를 끊어버린 셈이다. 그만큼 굳은 결심이다.
당초 양현종은 마이너행 거부권을 약속받고 미국에 갈 생각이었다. 스플릿 계약 후 기회도 얻지 못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다. 이제는 마음가짐을 바꿨다. 40인 로스터 등록이 마지노선이다. 다행히 마이너리그가 전면 취소된 지난해와 달리 트리플A 리그는 최소한 열릴 전망이다.
미국 현지 분위기는 여전히 냉랭하다. 전반적인 팬 반응도 “무모하다”는 쪽이다. 사실 류현진(토론토), 김광현(세인트루이스)과 비교하며 “주제를 모른다”고 비난하는 이도 있다. 돌이켜보면 8년 전 류현진, 지난해 김광현도 진출 전까지는 “MLB 수준이 아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일각에선 “실패하고 돌아와도 거액에 계약할 수 있으니 부담 없는 선택”이라고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그런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1년이란 시간은 선수에게 절대 짧지 않다. 30대 중반에겐 더욱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 가족을 두고 혼자 건너가 스프링캠프에서부터 실력을 평가받는다고 한다.
꿈을 위한 도전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양현종은 “KIA에 남아 편하게 뛸 수도 있지만, 나중에 미국에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2018년 노모는 충남 공주의 박찬호 기념관을 찾았다. 그 자리에서 “박찬호는 (한국인 첫 MLB 진출이라는) 힘든 도전을 했고, 그것을 노력으로 이뤄냈다”고 말했다. 박찬호 이후 많은 투수가 MLB 무대에 도전했다. 누군가는 성공했고 누군가는 실패했다. 성패를 떠나 모든 도전은 그 자체로 박수받을 일이다. 기자는 비록 소시민이지만, 양현종의 도전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