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스포츠랩소디] 축구, 그 이상의 축구 '올드 펌 더비'
일간스포츠

입력 2021.02.03 06:00

지난달 펼쳐진 셀틱과 레인저스의 올드 펌 더비 경기 모습. 게티이미지

지난달 펼쳐진 셀틱과 레인저스의 올드 펌 더비 경기 모습. 게티이미지

 
라이벌 팀 간의 경기는 선수나 팬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축구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지역에 기반을 둔 라이벌 팀 간의 경기를 ‘로컬 더비(local derby)’ 혹은 줄여서 ‘더비’라고 부른다. 영국 영어는 다비(DAR-bee)로 발음한다.

 
잉글랜드에는 유명한 더비 경기가 꽤 많다. 특히 아스널과 토트넘의 북 런던 더비와 리버풀과 에버튼의 머지사이드 더비가 국내 팬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라이벌전이자, 세계적으로 알려진 엘 클라시코는 문화·정치적 차이를 배경으로 한 두 명문 클럽의 대결로 유명하다. 하지만 두 도시간의 거리는 차로 7시간이 걸릴 정도로 멀어서, 엄밀히 말해 엘 클라시코는 더비 경기가 아니다.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치열한 더비는 올드 펌(Old Firm)이다. 올드 펌 더비는 스코틀랜드 최대의 도시 글래스고우를 연고로 하는 셀틱 FC와 레인저스 FC의 라이벌전을 의미한다. 스코틀랜드 축구를 대표하는 두 클럽 간의 경쟁은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16세기에 나타난 종교개혁으로 인해 스코틀랜드의 국교는 가톨릭에서 신교의 한 교파인 장로교로 변한다. 1840년대 대기근의 여파로 아일랜드에서 스코틀랜드로 건너온 이민자들의 상당수는 글래스고우의 동쪽에 정착했다. 당시 아일랜드 이민자들은 성가신 존재였다. 특히 이들의 대부분은 가톨릭을 믿었기 때문에, 신교도가 압도적으로 많은 스코틀랜드에서는 환영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장로교를 믿는 원주민들과 가톨릭교도들 사이에 주택과 고용 문제를 두고 경쟁이 벌어졌다.
 
그룹 간의 갈등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전통적으로 셀틱은 아일랜드 이민자들과 가톨릭교도의 지지를 받아왔다. 또한 정치적으로 셀틱 팬들은 사회주의 이념을 가진 노동당을 지지한다.
 
2002년 펼쳐진 올드 펌 경기 중 관중석의 모습. 레인저스의 팬들은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을 흔드는 데 반해, 셀틱 팬들은 주로 아일랜드 국기를 흔든다.

2002년 펼쳐진 올드 펌 경기 중 관중석의 모습. 레인저스의 팬들은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을 흔드는 데 반해, 셀틱 팬들은 주로 아일랜드 국기를 흔든다.

 
글래스고우의 남쪽에서 1872년 창단된 레인저스의 지지층은 스코틀랜드의 원주민이자 신교도 들이다. 전통적으로 팬들은 레인저스가 영국 왕실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연합을 포용하는 영국 클럽(British club)인 점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정치적으로 이들은 보수당을 지지한다.
 
레인저스는 오랫동안 가톨릭 신자인 선수와 계약하지 않는 불문율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989년 레인저스는 셀틱 출신의 가톨릭 신자 모 존스턴과 계약하며 이러한 관습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에 팬들은 홈구장 밖에 모여 자신들의 시즌 티켓을 불태우며 강력히 항의했다. 심지어는 선수단 내에서도 반발이 나왔다. 존스턴과의 계약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레인저스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올드 펌, 엘 클라시코와 네덜란드의 아약스와 페예노르트 라이벌전을 경험한 스웨덴 출신의 헨릭 라르손은 올드 펌 더비를 가장 치열한 라이벌전으로 꼽았다. 이탈리아의 밀라노 더비, 피오렌티나와 유벤투스의 라이벌 전과 올드 펌을 경험한 브리안 라우드럽도 라르손의 말에 동의했다.
 
두 클럽의 팬들은 라이벌 의식을 넘어 적대감을 오랫동안 보여왔다. 두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 간의 결혼도 드물었다. 올드 펌 더비 경기가 열리는 주말에는 평소보다 폭행사건이 9배가 증가하고, 1996년과 2003년도 사이에만 더비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8명의 팬이 숨졌다.
 
이러한 상황은 축구 스폰서십에 참가하려는 기업들에게도 골칫거리로 작용했다. 스폰서십에 참여하는 기업들은 팀에 대한 서포터스들의 열정이 스폰서인 기업에 장기적인 혜택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도시가 반으로 나뉘어 서로 적대감을 보이는 상황에서 기업이 한 클럽만 후원하면, 상대편 팀의 서포터스들을 적으로 만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셀틱과 레인저스는 셔츠 스폰서십을 1984년 처음 도입했다. 유리 전문 기업 ‘CR 스미스’는 두 클럽을 동시에 후원했다. 이러한 공동 후원(joint sponsorship)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통신회사 NTL과 맥주회사 ‘칼링과 테넌츠’는 1999년부터 2013년까지 올드 펌 듀오인 레인저스와 셀틱의 셔츠 스폰서였다.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 브랜드 칼링(Carling)은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셀틱과 레인저스의 셔츠 스폰서였다.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 브랜드 칼링(Carling)은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셀틱과 레인저스의 셔츠 스폰서였다.

 
유럽의 어떤 라이벌 클럽들도 가져본 적이 없는 이러한 조인트 스폰서십을, 셀틱과 레인저스는 네 번이나 가진 것이다. 두 클럽 간의 라이벌 의식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스폰서 기업들은 한 클럽만 후원할 경우 라이벌 클럽 팬들한테 배척당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이러한 전략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러한 조인트 스폰서십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통신회사 NTL의 공동 후원을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스폰서십을 통해 후원사의 인지도는 확실히 올라갔다고 한다. 하지만 공동 후원사인 NTL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좋기도 하지만 싫었다”고도 한다. 특히 팀에 대한 충성도가 높거나 열정적인 팬일수록 이러한 공동 스폰서인 NTL에 대해 거부감을 더 느꼈다. 결국 인지도를 높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에 따른 수익 창출에는 가시적인 효과를 보지 못한 NTL은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싸우다 보면 미운정이라도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셀틱 팬들은 2012년 4월 열린 올드 펌 더비 경기에서 재정난에 시달리는 레인저스에 동정 대신 조롱을 선사했다. 신약성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요한계시록은 선과 악이 벌이는 최후의 대결을 묘사하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4인의 기사(Four Horsemen of the Apocalypse)는 세상의 종말에 닥칠 네 가지 공포(정복자, 전쟁, 기근, 죽음)를 의미한다. 셀틱 팬들이 선보인 레인저스를 위한 4인의 기사 그림에서 셀틱의 감독 닐 레논은 정복자로, 레인저스를 파산으로 몬 구단주 크레이그 와이트는 죽음으로 묘사했다.

오랫동안 싸우다 보면 미운정이라도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셀틱 팬들은 2012년 4월 열린 올드 펌 더비 경기에서 재정난에 시달리는 레인저스에 동정 대신 조롱을 선사했다. 신약성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요한계시록은 선과 악이 벌이는 최후의 대결을 묘사하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4인의 기사(Four Horsemen of the Apocalypse)는 세상의 종말에 닥칠 네 가지 공포(정복자, 전쟁, 기근, 죽음)를 의미한다. 셀틱 팬들이 선보인 레인저스를 위한 4인의 기사 그림에서 셀틱의 감독 닐 레논은 정복자로, 레인저스를 파산으로 몬 구단주 크레이그 와이트는 죽음으로 묘사했다.

 
2011~12시즌 과도한 부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레인저스는 법정관리를 신청하였고, 승점 삭감 등의 중징계를 받았다. 새로운 구단주가 레인저스를 인수했다. 하지만 시즌이 종료된 후 클럽의 거취를 놓고 벌인 투표에서 레인저스는 4부 리그로 강등당했다. 하위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낸 레인저스는 4년 만에 다시 1부 리그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4년 동안 스코틀랜드 축구의 최고 히트 상품인 올드 펌 더비는 열리지 못했다.
 
이정우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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