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데이터의 허를 찔러라. 2021시즌 '키플레이어' 홍창기(28)를 향한 류지현(50) LG 감독의 주문이다.
LG는 지난해와 전혀 다른 타순을 구성해 시범경기를 치르고 있다. 2020시즌 주로 2번 타자로 나섰던 오지환이 9번에 들어간다. 4번 타자로 가장 많은 타석을 소화했던 '거포' 로베르토 라모스는 2번으로 전진 배치했다.
류지현 감독은 "1번 타자 홍창기의 출루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결단이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홍창기는 2020시즌 출루율 0.411(리그 6위)를 기록했다. 2016년 입단한 그는 2019시즌까지 1군에서 38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한 무명이었지만, 지난해 탁월한 선구안을 무기로 존재감을 발휘했다. 류 감독은 2020시즌 3할 타율을 기록한 오지환이 하위 타순의 출루율을 높여주고 홍창기가 단단한 연결고리 역할을 해준다면, 중심 타선에 타점을 올릴 기회가 많아질 수 있다고 본다.
타순 변화의 성패는 홍창기의 출루율에 달렸다. LG 핵심 선수로 올라선 홍창기를 향한 상대 팀의 견제는 지난해보다 심해질 것이다. 그래서 류지현 감독은 홍창기의 성장을 바란다. 현재 강점(선구안)을 유지하면서도 상황에 맞는 타격을 하는 능력이 향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 감독은 "홍창기는 다른 타자보다 공을 많이 보고 타격을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변화구 대처가 좋다. 그러나 적극적인 면도 필요하다. 결정(타격 결과)이 필요한 상황이나 유리한 볼카운트에서는 타격에 나서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창기는 2020시즌 타석당 투구 수 4.37개를 기록했다. KT 조용호(4.46개)에 이어 리그 2위 기록이다. 상대 투수로부터 가장 많은 공을 끌어내는 타자였다. 볼넷(83개)도 리그에서 4번째로 많이 얻어냈다. 1번 타자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류지현 감독도 2스트라이크 이후 승부에서 발휘되는 홍창기의 선구안을 극찬한다. 그러나 상대 배터리에게 '홍창기는 공을 많이 보는 타자'라는 인식이 고정되길 바라지 않는다. 류 감독은 "유리한 볼카운트에서는 결정을 해줘야 상대 투수도 쉽게 승부를 할 수 없다. 나도 선수 시절 '류지현은 초구를 안 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때로는 의도적으로 (초구를 공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전략적인 접근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상대가 가진 데이터를 역이용하는 타격을 보여줄 필요도 있다는 얘기다.
홍창기도 사령탑의 의중을 이해한 모양새다. 이번 시범경기에서는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배트를 돌리고 있다. 류지현 감독도 홍창기가 21일 한화전에서 닉 킹험으로부터 때려낸 우중간 홈런에 의미를 부여했다. 류 감독은 "홍창기가 나오면 상대는 좌측 선상 수비를 강화한다. (한화전 홈런처럼) 우측에 좋은 타구를 보여줘야 상대가 의식하게 된다. 이 타구는 정말 좋았다"고 했다. 류 감독은 홍창기가 다양한 능력을 발휘해 상대 배터리와 수비를 흔들면, 더 많이 출루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