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무쌍한 '수베로 시프트'는 내야수 4명·외야수 3명의 틀을 깨는 극단적인 모습을 몇 차례나 선보였다.
9일 잠실 LG-한화 더블헤더(DH) 1차전. 2회 말 LG 로베르토 라모스가 타석에 들어섰다. 한화 내야수는 분주히 움직였다. 급기야 유격수 하주석이 중견수 유장혁과 우익수 임종찬 사이로 이동했다. 좌익수 장운호까지 총 4명이 외야에 서 있었다. 하주석은 외야 우중간을 지켰다. 3루수 노시환도 2루 근처로 옮겨, 1루수 라이온 힐리와 2루수 정은원까지 남은 3명의 내야수는 모두 1-2루 사이에만 위치했다. 2루와 3루 사이를 지키는 야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극단적으로 당겨치는 라모스를 의식한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의 맞춤형 수비 시프트였다. 최근 김현수와 라모스를 상대하는 거의 모든 팀이 수비 시프트를 가동하나, 이처럼 내야수 3명-외야수 4명을 두는 수비 전형을 선보이는 팀은 거의 없었다.
올 시즌 한화 지휘봉을 잡은 수베로 감독은 변화무쌍한 수비 시피트로 KBO리그에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승리 확률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자, 맞춤형 전략이다. 볼카운트에 따라 수비수의 위치를 조정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베로 감독은 투수가 불리한 볼카운트에 몰리자 타자(김현수, 라모스)가 더 자기 스윙으로 당겨칠 것에 대비 기존 수비 시프트에, 또 수비 시프트를 더했다.
라모스의 타구가 외야로 향할 것이라는 한화의 예측은 맞았으나 결과까지 성공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라모스의 타구는 정확하게 우중간에 서 있는 하주석과 우익수 임종찬 사이에 떨어졌다. 라모스는 상대 수비 시프트를 뚫고 기분 좋은 안타를 기록했다.
수베로 감독은 1-0으로 앞선 4회 말 김현수 타석에서도 마찬가지로 2회 라모스 타석 때처럼 수비수 위치를 조정했다. 이번에도 적중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김현수의 타구는 이익수(2루수+우익수) 위치에 있던 정은원에게 향했다. 정은원이 원래 위치를 지켰다면 2루수 키를 넘어가는 우전 안타였다. 하지만 정은원은 이 공을 잡아 1루에 던져 아웃 판정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김현수는 비디오 판독을 강하게 요청했고, 원심은 번복돼 세이프 판정이 나왔다. 정은원이 잘 잡았지만 워낙 깊숙한 곳에서 잡았고, 김현수가 전력으로 질주해 내야 안타를 만들었다.
수베로의 적극적인 수비 시프트에도 불구하고 한화는 DH 1차전에서 1-11로 졌다. 김현수의 내야 안타 이후 4회에만 무려 8점을 내줘 승기를 뺏겼다.
LG 김현수는 홈런 포함 4타수 3안타 3타점을 기록했고, 라모스는 5타수 3안타로 올 시즌 처음 2경기 연속 멀티 히트(한 경기 2안타 이상)를 때려냈다.
수비 시프트는 확률 싸움이다. 항상 성공할 수도 없고, 실패하지도 않는다. 결과론이다. 김인식 전 국가대표 감독은 "잘 됐을 때 높이 평가받고, 실패하면 따가운 시선이 향한다. 평상시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결정적인 상황에서 어떤 결과를 낳느냐, 또 실책을 범하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