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23)에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관한 추억을 물었다. "나는 베이징 키즈였다", "금메달 신화를 보며 꿈을 키웠다"는 의례적인 답변을 예상했다.
하지만 이정후는 달랐다. 한국 야구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올림픽을 계기로 "KBO리그의 부흥을 이끌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고민과 책임감이 엿보였다.
이정후는 '베이징 키즈'가 틀림없다. '바람의 아들'로 불렸던 아버지 이종범(LG 코치)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야구를 접했지만,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한 뒤 '태극마크의 꿈'을 갖게 된 계기는 베이징 올림픽이었다.
이정후는 "베이징 올림픽 당시 난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당시 예선부터 결승전까지 9경기를 다 봤다. 한국의 경기가 있는 날엔 야구부 코치님이 TV를 틀어놓고 모두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라며 "그때 선수들이 정말 멋있어 보였다. 지금 같은 팀에 뛰고 있는 이용규(키움) 선배님도 정말 잘했다"고 회상했다.
막 야구를 시작한 꿈나무의 시선에 한국 대표팀은 감탄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정후는 "한국이 우승하자 초등학교 야구 선수였던 내가 우승한 것처럼 자랑하고 다녔다. 기(氣)가 살더라"고 웃으며 "나도 나중에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두 손 모아 야구 대표팀을 응원했던 꿈나무는 13년이 흘러 올림픽 그라운드를 직접 밟게 됐다. 대표팀을 보며 누군가는 야구 선수의 꿈을 키울 수 있고, 야구를 잘 모르는 일반 국민의 관심을 끌어모을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이정후는 잘 알고 있다. 그는 "이전에는 국가대표 소속으로 뛸 때는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느낌이었다. 막내 입장이라 부담도 크게 못 느꼈다"며 "(올림픽에서) 내가 잘하면 더 스타가 될 수 있다. 또 야구에 관심 없던 분들도 국가대표 경기여서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실 것 같다. 야구를 시작한 어린이들에게도 꿈을 심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젊은 나이이지만, 이정후는 KBO리그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최근 야구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가 야구계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3년(2016~2018년) 연속 800만 관중을 돌파한 프로야구 인기가 내림세에 접어들었다는 것.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도 있겠지만, 경기 질적 하락 등 다양한 요소들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위기를 돌파할 가장 좋은 방법은 올림픽 메달이다. 떠난 팬들을 다시 야구장으로 불러모으고, 야구를 모르는 팬들도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다. 그는 "야구 인기가 예전보다 사그라들고 있다고 한다. 요즘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e-스포츠의 인기가 정말 높더라"며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야구 인기를 살릴 수 있었으면 한다"라고 했다.
13년 전 TV 앞에서 '베이징 금메달 신화'를 응원한 이정후는 이제 '도쿄의 기적'을 위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