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시대의 아이콘, 김연경이 선사한 행복 배구
일간스포츠

입력 2021.08.08 17:58

안희수 기자
한국 여자 배구의 아이콘 김연경. 스포츠팬에 배구의 재미를 알렸다. 게티이미지

한국 여자 배구의 아이콘 김연경. 스포츠팬에 배구의 재미를 알렸다. 게티이미지

 
김연경(33)의 '라스트 댄스'가 끝났다. 염원을 이루지 못한 순간에도 '여제'의 품격을 잃지 않았다.  
 
김연경은 8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세르비아와의 동메달 결정전에 출전, 11득점 하며 공격을 이끌었다. 하지만 한국의 세트 스코어 0-3(18-25, 15-25, 15-25) 완패를 막지 못했다. 45년 만에 올림픽 메달 사냥에 나선 한국 여자 배구의 도전도 아쉬움을 남긴 채 마무리됐다.  
 
김연경은 박빙 승부가 이어진 1세트, 고비마다 득점하며 존재감을 발휘했다.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도 동료들을 독려하며 경기를 이끌었다. 한국이 1·2세트를 내주고 맞이한 3세트 초반에는 3연속 득점하며 반격 태세를 보여주기도 했다. 전력 차이는 명확했고, 김연경의 분전도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연경과 한국 선수들은 경기 내내 아름다운 도전을 이어갔다. 
 
김연경은 한국·일본·터키·중국 리그를 거치며 우승 트로피와 시즌 최우수선수(MVP)를 수 차례 거머쥐었다. 세계적인 공격수로 인정받았고 '배구 여제'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완벽한 김연경의 커리어에 딱 한 가지 채우지 못한 타이틀이 올림픽 메달이었다. 첫 출전한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에 패하며 울분을 삼겼고, 2016 리우올림픽에서는 8강전에서 네달란드를 넘지 못하고 탈락했다. 
 
김연경은 도쿄 대회를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 무대로 삼고 배수의 진을 쳤다. 지난해 1월 아시아 대륙 예선에서는 복근이 찢어지는 부상을 안고도 본선행을 이끌었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서 고액 연봉을 마다하고 V리그로 복귀하기도 했다. 
 
도쿄 레이스는 뜨거웠다. 김연경은 1승1패로 맞이한 도미니카공화국과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20득점하며 한국의 3-2 승리를 이끌었다. '숙적' 일본과의 예선 4차전에서도 30득점을 쏟아내며 3-2 승리를 견인, 한국의 8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열세 전망이 지배적이었던 세계랭킹 4위 터키와의 8강전에서도 양 팀 합계 최다인 28득점을 기록하며 4강 진출을 이끌었다. 5세트만 7득점 하며 해결사 본능을 발휘했다. 
 
외신은 김연경의 활약을 집중 조명했고, 국제배구연맹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10억명 중 단 한 명의 스타"라고 극찬했다. 그가 4강에 오르는 과정에서 보여준 리더십은 올림픽 기간 내내 한국을 향해 차가운 눈길을 보냈던 일본 네티즌마저 사로잡았다. 
 
강호 브라질과의 4강전, 세르비아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도 패하며 메달 획득이라는 염원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에서도 여제다운 품격을 보여줬다.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도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단 한 순간도 실망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패배 확정 뒤에도 미소를 머금고 후배들을 격려했다. 
 
경기 뒤 김연경은 "런던은 별생각 없이 갔고 리우는 많은 욕심을 가지고 갔던 올림픽이었다. 이번 올림픽은 그냥 '후회 없이 하고 돌아오자'는 생각이었다"라며 세 차례 출전한 올림픽을 돌아봤다. 이어 "여기까지 온 건 기쁘게 생각한다. 우리조차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2005년부터 16년 동안 달았던 태극마크를 이제 내려놓을 전망이다. 김연경은 "(배구) 협회와 회장님이랑 얘기해야겠지만 사실상 이번 경기가 국가대표로 뛴 마지막 경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김연경의 국가대표팀 은퇴가 한국 여자 배구의 전력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김연경은 함께 싸운 동료들을 향한 믿음을 드러냈다. 
 
김연경은 "(후배들에게) 웃으라고 했다. 웃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도쿄올림픽에서 보여준 동료들의 투지와 열정을 치켜세운 뒤 "이번 경기를 통해 선수들이 우리가 해야 할 미래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던 거 같다. 후배들이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을 이어갔으면 좋겠다"라는 말로 '포스트 김연경' 시대를 이끌어 갈 선수들을 향한 메시지를 전했다.
 
김연경은 10년 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한국 배구를 세계 무대에 알리고 있는 자신의 행보에 자부심을 드러내면서도, 다른 종목 해외파 선수들에 비해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섭섭한 마음을 드러냈다. 여자 배구에 관심을 바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김연경은 스스로 배구 흥행을 이끌었다. 그가 세계적인 선수로 거듭나며 자신을 이름을 알린 뒤 여자 배구를 향한 관심도 급증했다. 여자부 V리그는 프로 야구를 위협하는 인기 콘텐트로 성장했다. 
 
한국 구기 종목 자존심을 지켜준 여자 배구는 도쿄올림픽 내내 가장 큰 응원을 받았다. 스포츠팬은 설렘으로 대표팀의 다음 경기를 기다렸다. 김연경이 선사한 선물이다. 
 
안희수 기자 an.hee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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