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땅 도쿄, '돌부처'가 얻은 깨달음
일간스포츠

입력 2021.09.02 09:53

8월 7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야구 도미니카공화국과의 동메달 결정전. 오승환이 9회말 6-10으로 패배가 확실시되자 더그아웃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8월 7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야구 도미니카공화국과의 동메달 결정전. 오승환이 9회말 6-10으로 패배가 확실시되자 더그아웃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악몽으로 끝난 도쿄올림픽. '돌부처'는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지난달 7일 오승환(39·삼성)은 죄인에 가까웠다. 도쿄올림픽 야구 도미니카공화국과의 동메달 결정전에 등판해 ⅓이닝 4피안타(1피홈런) 5실점 했다. 6-5로 앞서던 경기가 6-10으로 끝나 그는 패전투수가 됐다. 김경문호는 노메달 수모를 당했고 메달 획득으로 병역 혜택을 바란 몇몇 후배의 바람도 물거품이 됐다. 오승환은 경기 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힘들고, 죄송하다"며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걱정한 건 그의 후반기였다. 귀국 이틀 뒤인 8월 10일 곧바로 후반기 일정이 시작됐다. 체력소모도 컸는데 '도쿄 쇼크'에서 벗어날 시간적 여유마저 부족했다. 기우였을까. 오승환의 후반기는 전반기보다 더 안정적이다. 후반기 첫 7번의 등판에서 3세이브 평균자책점 제로. 6⅔이닝 동안 3피안타 무실점했다. 25타자를 상대로 탈삼진을 12개나 뽑아냈다. 9이닝당 삼진이 무려 16.2개다.

김태균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은 "오승환은 팀이 필요할 때, 팀이 원할 때 언제든지 나온다. 마무리 투수들은 너무 자주 나오면 관리를 할 수밖에 없는데 오승환은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8월 4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야구 한국과 일본의 준결승전. 8회말 교체 투입된 한국 투수 김진욱이 투구하고 있다. 김진욱은 수직 릴리스 포인트가 높은 투수다. [연합뉴스]

8월 4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야구 한국과 일본의 준결승전. 8회말 교체 투입된 한국 투수 김진욱이 투구하고 있다. 김진욱은 수직 릴리스 포인트가 높은 투수다. [연합뉴스]


8월 31일 대구 키움전이 끝난 뒤 오승환은 "(후반기 좋아진) 계기나 바뀐 게 있으면 설명을 하겠는데 운동하거나 투구하거나 크게 바뀐 게 없다"고 몸을 낮췄다. 그러면서 대회 기간 까마득한 후배 김진욱(19·롯데)과 한 캐치볼 얘기를 꺼냈다. 오승환은 "올림픽에 가서 김진욱과 캐치볼을 하는 데 공을 놓는 타점이나 (릴리스) 포인트를 보면서 '나도 그렇게 던져야겠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왼손 투수 김진욱은 수직 릴리스 포인트가 높다. 공을 타자 쪽으로 끌고 나와 던져 체감 구속이 빠른 편이다.

오승환은 "(김진욱의 캐치볼은) 잡는 것도 힘들다. 그런데 잡는 것보다 타자들이 치는 게 더 어렵지 않나.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조금 놓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순간 '아차' 하면서 깨달았다"고 돌아봤다. 배움에는 후배와 나이를 가리지 않았다. 고우석(23·LG)과의 캐치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대표팀에 가서 공을 잘 던지는 선수들과 캐치볼 하면서 왜 좋은 공을 던지나 유심히 지켜봤던 게 공부가 되지 않았나 한다"고 말했다. 대회에서 보고 느낀 걸 이미지 트레이닝해 후반기 마운드에 오르고 있다.

오승환은 8월 31일 키움전에선 시즌 30세이브 고지에 선착했다. 후반기 차곡차곡 세이브를 올려 개인 통산 여섯 번째 구원왕을 향해 순항했다. 삼성은 2016년부터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올해는 리그 3위로 전망이 밝다. 오승환은 "(새로운 홈구장인) 라이온즈파크로 온 뒤 한 번 도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했는데 올해가 기회"라며 "가을야구뿐만 아니라 조금 더 높은 곳을 봤으면 좋겠다. 선수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팀이 강해졌다는 걸 느낀다. 우리 팀이 강팀이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돌부처'는 더 단단해졌다. 도쿄올림픽의 아픔을 조금씩 지워나가고 있다. 그는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없겠더라. 팀에 돌아와서도 좋지 않고 흐트러지면 지금까지 했던 게 무너지지 않을까 했다. 그러면 타격이 정말 크게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을 더 잡았다"며 "그 순간만큼은 지금도 선수들에게 미안하지만 그러면서 강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김경문 감독님에게도 많은 걸 배웠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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