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외야진은 개막 전에 '빅5'로 불릴 만큼 탄탄한 선수층을 자랑했다. 선발 세 명이 필요한 외야수 라인업에서 선발급 자원이 다섯 명이나 된다는 뜻이다. 김현수, 이천웅, 채은성, 이형종, 홍창기까지 라인업이 쟁쟁하다. 외야에 선발 출전하는 셋을 제외하고 나머지 한 명이 지명타자로 나서도 또 다른 한 명은 벤치에서 대기를 해야 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현재까지 LG에서 규정 타석을 채운 외야수는 김현수와 홍창기, 둘밖에 없다. 나머지 셋은 부상과 부진이 이어졌다.
이형종은 부진했던 외야수 '빅5' 중 하나다. 그는 전반기 타율 0.218로 극도의 부진에 시달렸다. 49경기에서 홈런 8개를 쳤지만, 정확성이 너무 떨어졌다. 이런 부진 탓에 출전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1군에서 몇 차례 제외됐다.
도쿄올림픽 휴식기를 알차게 보낸 이형종은 후반기 들어 달라졌다. 8월 10일부터 9월 6일까지 타율 0.315를 기록했다. 전반기 대비 홈런(8개→1개)은 줄었지만, 장타율(0.429→0.444)과 출루율(0.347→0.373)은 올랐다. 특히 전반기 0.146으로 꽉 막혔던 득점권 타율이 후반기 0.294로 크게 향상됐다.
이제야 웃음을 되찾은 이형종은 "후반기에 조금 나아진 것 같다. 돌파구를 찾은 느낌이다"고 말했다.
이형종은 슬럼프 탈출을 위해 이것저것 다 시도해 봤다. 그는 최근까지 콧수염과 턱수염을 길렀다. 수염을 기른 건 생전 처음이었다. 그는 "원래 수염 기르는 것을 안 좋아하는데 그냥 잘 안 되니까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이었다"고 털어놨다.
또 독서도 하고, 음악도 들었다. 이형종은 이를 "자아 성찰하는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부진한 성적에 대한 아내의 꾸짖음 속에 러닝머신 위를 열심히 달렸다. 이형종은 "그라운드에서 많이 뛰니까, 평소에 걷거나 뛰는 것을 싫어한다. 지난달부터 아침에 훈련장에 와서 러닝머신을 타보니 '할 만하네'라고 느꼈다. 싫어하는 것도 해보니 괜찮더라. 나에게 '고생 많이 했다'고 칭찬해줬다"고 말하기도 했다 .
이형종은 야구 열정과 욕심이 많은 선수다. 2007년 서울고 3학년 당시 대통령배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에서 끝내기 안타를 맞고 마운드에서 펑펑 울어 한때 '눈물 왕자'로 불렸다. 강한 승부욕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는 이후 순탄치 않은 야구 인생을 보냈다. 2008년 LG 1차 지명 투수로 입단한 이형종은 2경기에 등판한 뒤 현역에서 은퇴했다. 골프 선수로 전향했다가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대신 투수가 아닌 배트를 들고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로 역할을 바꿨다.
우여곡절이 많은 야구 인생을 보낸 그는 매년 조금씩 성장했다. 레그킥을 장착하고, 스윙 메커니즘에 변화를 줬다. 치열한 외야 경쟁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갖추기 위해 장타력 장착을 목표로 구슬땀을 쏟았다. 2019년 팀 내 홈런 2위(13개), 지난해에는 3위(17개)였다.
올 시즌에는 이런 부담감이 스스로를 짓눌렀다.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고, 사령탑 교체로 인해 바뀐 팀 색깔에 적응을 못 했다. 이형종은 "스스로 조급해하고 나를 아끼지 않는 느낌들이 있었다. 올해 유독 심하게 나를 몰아붙였다"고 뒤돌아봤다. 자신과 싸움에서 길고 긴 어두운 터널에 들어갔다가, 후반기 들어서야 막 헤쳐나온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중심타자 채은성이 부상에서 돌아와 LG 외야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형종이 부진한 사이에 '거포 유망주' 이재원이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형종으로선 자신의 진가를 발휘해야 한다. 시즌 타율은 아직 2할 4푼대로 낮은 편이나, 장타력만큼은 4할 중반대로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이형종은 "나이로는 베테랑이지만 타자로서는 1군 6년차다. 지금은 보여줄 나이인데 올해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고, 한 단계 더 올라가고 싶었다"며 "자존감이나 컨디션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반전을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