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 강타자 봉쇄. KT 왼손 불펜 투수 조현우(27)가 포스트시즌(PS)을 앞두고 받은 특명이다.
이강철 KT 감독은 지난 5일 수원 NC전 8회 초, 왼손 타자 나성범의 타석에서 마운드 위 주권을 내리고 조현우를 투입했다. 8회 초 등판한 주권은 선두 타자 최정원과 후속 정진기를 공 4개로 깔끔하게 범타 처리한 상황.
주권은 나성범에게 강했다. 2020시즌 8번 승부에서 1안타밖에 내주지 않았다. 2019~20시즌 왼손 타자 상대 피안타율(0.216)도 매우 낮은 편이었다. 다소 의아한 투수 교체였다.
조현우는 이어진 상황에서 나성범에게 2루 땅볼을 유도했다. 내야수의 포구 실책 탓에 출루를 허용했지만, 타자와의 승부에서는 이긴 셈이다.
KT는 3-2로 앞서고 있었다. 조현우에게 홀드를 챙겨주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하지만 이 감독은 이에 대해 "그런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이전에도 기록을 의식하다가 안 좋은 결과가 있었다. 꼭 그런 이유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조현우가 나성범 타석에서 투입된 이유는 따로 있다. 장타를 허용할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서다. 조현우는 지난주까지 왼손 타자 상대로 피장타율 0.313를 기록했다. 다른 필승조 일원인 김재윤(0.374), 주권(0.368), 이대은(0.319)보다 낮다. 왼손 타자 상대로 피홈런도 없었다.
나성범은 리그 홈런 1위를 지키던 강타자. 조현우의 투입은 '최소한 홈런은 허용하지 않겠다'라는 이강철 감독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이 감독은 "(조)현우가 자신의 공을 던질 때는 강타자들도 잘 상대한다. 지난 2시즌 동안 지켜보며 '생각보다 강심장을 가진 선수'라는 생각도 들었다"라고 설명했다.
조현우를 내세운 이유는 또 있다. 선수가 자신이 등판할 상황을 자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KT는 11일 기준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PS에서 만날 수 있는 리그 상위 팀들은 모두 왼손 강타자가 있다. LG 김현수, 삼성 구자욱과 오재일, 두산 김재환이 대표적이다. 조현우는 2020~21시즌 김현수와의 9번 승부에서 안타를 허용하지 않았다. 김재환 상대로 피안타율 0.222다.
이강철 감독은 "조현우는 중요한 순간에 내세워야 할 투수"라고 강조했다. 투입 시점을 7·8회로 한정하지 않고 홈런 생산 능력이 뛰어난 타자가 박빙 상황에 타석에 서면, 원 포인트 릴리프로도 활용할 생각이다.
조현우는 KT의 1위 수성 분수령이었던 11일 LG전에서도 임무를 완수했다. KT가 4-2로 앞선 7회 말 마운드에 올라 홍창기·김현수·서건창으로 이어지는 LG 왼손 타자 라인을 삼자범퇴로 막아냈다. 조현우가 가을야구 '신 스틸러'를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