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농구 인천 신한은행 돌풍의 중심 유승희(27·1m75㎝)는 구나단(39) 감독대행에게 공을 돌렸다.
개막 전 하위권으로 분류됐던 신한은행은 최근 3연승을 달리며 단독 2위(4승1패)에 올랐다. 지난 10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아산 우리은행을 67-63로 꺾었다. 유승희가 상대 에이스 박혜진을 4점으로 꽁꽁 묶었고, 공격에서 23점을 몰아쳤다. 프로 10년 차 유승희의 개인 한 경기 최다 득점이었다. 한때 종로 학원가에서 유명 영어 강사였던 구 감독대행이 유승희 성적을 쑥쑥 올렸다.
유승희는 11일 전화 인터뷰에서 “감독님은 농구에 진심인 분이다. 경기 영상을 컷마다 편집해 단체 카톡방에 올려준다”며 “전 오른쪽으로만 돌파해서 ‘오돌이’라 불린다. 구 감독님이 ‘오른쪽으로 가는 척하면서 왼쪽을 먹어야 한다’고 지시하셨다. 제가 어제 드라이브 인으로 왼쪽을 먹었다”고 뿌듯해했다.
얼마 전 가드 김애나가 부상을 입자, 구 감독대행은 4번(파워포워드) 유승희에게 1번(포인트가드)까지 맡겼다. 유승희는 “1번부터 4번까지 포지션별로 ‘이걸 이렇게 해야 한다’고 족집게 강사처럼 말해주신다. 담임 선생님이 방과 후 열등생을 붙잡고 열정적으로 가르쳐주는 것 같다”며 웃었다.
유승희도 ‘자율학습’을 했다. 유승희는 “구 감독님이 추구하는 가드 스타일은 일본 국가대표 가드다. 우리 팀 재일교포 가드 황미우 언니에게 물어서 일본 영상을 찾아봤다. 마쓰다 루이는 빠르게 밀고, 모토하시 나코는 키(1m64㎝)가 작은 데도 슈팅이 좋다. 가드부터 공격이 파생되더라. 가드는 슛이 있어야 한다고 느껴서 슛 훈련을 열심히 했다. 하루에 3점 슛을 120~150개 성공할 때까지 쐈다”고 전했다.
유승희는 우리은행전에서 3점 슛 5개를 던져 모두 성공했다. 올 시즌 평균 14.2점, 5.4리바운드, 3.2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2012년 프로 데뷔한 유승희는 2018년까지 평균 득점 1~3점대에 그쳤다. 두 차례 큰 부상으로 2018년부터 두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유승희는 “2018년 8월 박신자컵(컵대회)에서 드라이브 인 하다가 십자인대가 끊어져 수술을 받았다. 2019~20시즌을 앞두고 연습경기 때 또 십자인대가 끊어졌다. ‘농구를 그만두라는 하늘의 계시인가’란 생각도 들었다. 주변에서 ‘유승희 농구인생은 끝났다’고 하더라. ‘어떻게든 코트에 돌아가 슛 하나라도 쏘겠다’는 생각으로 독기를 품고 재활훈련을 했다”고 했다. 유승희는 올 시즌을 앞두고 무릎에 고정한 핀을 제거했다.
‘수험생 모드’인 유승희는 머리카락을 말리는 시간도 아까워 최근 싹둑 잘랐다. 유승희는 “원래 긴 파마머리였다. 자고 일어나면 삽살개처럼 됐다. 머리 말릴 때 컬도 넣어야 하는 등 시간이 걸리더라. 그래서 파마를 풀고 짧게 잘랐다. 반 묶음 머리가 안 돼 동료 (김)연희가 양 갈래로 따줬다”고 전했다.
신한은행은 최근 몇 년간 김단비(32) 혼자 활약하는 원맨팀이라는 의미로 ‘단비은행’이라 불렸다. 올 시즌에는 유승희, 김아름 등이 고른 활약을 펼친다. 청주 KB와 우리은행 2강 체제를 무너뜨릴 기세다. 유승희는 “우리은행을 꺾었듯 신한은행이 반짝 잘한 게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