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동계 최강 노르웨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일간스포츠

입력 2022.03.02 06:07

김식 기자
1924 초대 동계올림픽부터 지금까지 거의 상위권을 유지한 노르웨이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대회가 있다. 바로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1988 올림픽이다. 노르웨이는 캘거리에서 금메달 없이 겨우 5개 메달(은 3, 동 2)을 획득했다. 눈과 얼음의 나라로 스키와 스케이팅을 즐기는 노르웨이가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다. 특히 이웃 국가이자 라이벌인 스웨덴(금 4, 동 2)에 크게 밀렸다.
 
노르웨이는 고민했다. 더군다나 1994년에는 자국의 릴레함메르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릴 예정이었다. 이에 정부와 스포츠 지도자들이 모여 문제점을 파악했고, 체육 단체는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이듬해인 1989년 엘리트 스포츠 센터인 ‘올림피아토펜’이 건설됐다. 이 센터는 훈련장, 의료시설, 우수한 지도자와 스포츠 과학 등 모든 환경을 구비했다. 가장 뛰어난 선수들이 함께 훈련하며 기량을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노르웨이 스포츠는 협력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올림피아토펜도 이러한 공유와 상호작용이라는 새로운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센터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다른 종목의 선수들은 서로 만나 정보를 교환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설립 이후 이곳에서 만난 다양한 종목의 선수와 코치들은 각자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알파인 스키와 스케이팅 선수들이 같이 훈련하면서 자기들만의 코너를 도는 방법, 몸의 위치나 트레이닝 노하우 등을 공유하고 서로 배우게 되었다. 연관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크로스컨트리 스키와 축구도 지식 교환을 통해 서로 배울 점이 있다고 한다. 다양한 전문지식 공유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고, 이러한 시스템은 노르웨이가 그 후 동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 일조한다.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국가 중 인구가 가장 적은 나라는 노르웨이다. 이들은 1952년 오슬로에 이어 1994년 릴레함메르에서 두 번째 올림픽을 개최했다. 특히 릴레함메르는 지금도 회자할 정도로 이들에게 특별한 대회였다. 200만 명에 가까운 관중을 동원해 흥행에서도 대성공이었고, 노르웨이는 총 메달 수(26개)에서 1위를 기록하며 캘거리에서 무너진 자존심을 완전히 회복했다.
 
릴레함메르에서 거둔 뛰어난 성적에 노르웨이인들은 열광했다. 특히 올림픽 영웅들이 어린이들에게 미친 영향이 컸다. 이들은 자국의 유망주들한테 중요한 롤 모델이자 영감의 원천이 된 것이다. 1994 대회의 성공에서 고무받은 세대가 주축을 이룬 노르웨이 대표팀은 2010년대에 열린 동계올림픽에서도 연거푸 좋은 성적을 거둔다.
 
노르웨이의 테레세 요헤우(3번)가 2월 5일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 국립 크로스컨트리 스키 센터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스키 여자 7.5km+7.5km 스키애슬론 경기에서 역주하고 있다.   요헤우는 이날 베이징 동계올림픽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연합뉴스]

노르웨이의 테레세 요헤우(3번)가 2월 5일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 국립 크로스컨트리 스키 센터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스키 여자 7.5km+7.5km 스키애슬론 경기에서 역주하고 있다. 요헤우는 이날 베이징 동계올림픽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연합뉴스]

필자는 3회에 걸쳐 동계올림픽 최강 노르웨이의 비결을 알아보았다. 한국스포츠는 그들의 성공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물론 한국과 노르웨이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우리는 동계스포츠에 적합한 천혜의 자연환경이 없다. 한국은 노르웨이만큼 부자이지도, 평등한 사회도 아니다.
 
매력적으로 보이는 노르웨이 모델도 우리가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한국스포츠는 아직도 엘리트 선수 위주다. 생활체육의 중요성은 꾸준히 대두하고 있지만, 이에 따른 예산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우리의 사회 구조는 많은 국민이 이러한 체육에 참여하는 데 걸림돌이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는 노르웨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경쟁적이다. 밥 먹고 살기 바쁜 국민 다수는 편안한 마음으로 자아실현을 위해 스포츠에 참여할 형편도 안 된다. 또한 지금같이 거의 모든 학생이 대학입학에 목매는 현실에서는 생활체육에 참여하는 학생이 많을 수가 없다.
 
13세 이전의 경기는 순위나 평가를 하지 말고, 어린이들이 다양한 스포츠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본받자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어린 나이에 집중적으로 연마해야 하는 기술 스포츠(technical sports: 체조, 다이빙, 피겨 스케이팅 등)에 적합하지 않다. 아울러 조기교육과 성적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가 이러한 시스템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의문이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노르웨이 모델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그들이 가진 ‘팀 정신’이다. 파벌이나 특혜가 없고 평등한 대접을 받는 선수들이 열심히 함께 하는 것이 노르웨이 스포츠의 힘이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은 사회적 기술(social skills)의 부족에서 나온다. 사회적 기술이란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이다. 이 기술은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학습하는 것이고 노력으로 얼마든지 향상할 수 있다. 사회적 기술을 익힌 이는 타인과 효과적으로 의사 교환을 할 수 있고, 대인 관계에서 생겨나는 갈등을 적절하게 해결한다. 결국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이러한 기술을 배우는 과정을 ‘사회화’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는 세대 간, 소득에 따른 불협화음과 ‘갑질’ 논란 등 많은 갈등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른다. 자기만이 옳고, 편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기술만 제대로 익혀도 이러한 갈등은 많이 줄어들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은 언제 배워야 가장 효과적일까?
 
어렸을 때 배워야 한다. 노르웨이 모델의 최우선 과제는 어린이들을 스포츠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많은 돈을 쓰고 노력을 기울인다. 이들의 목표는 능력 있는 선수를 조기에 발굴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들을 스포츠 영재로 키우는 것에 그들은 관심이 없다. 대신 노르웨이 모델은 스포츠를 통해 어린이들이 사회성을 개발하고,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필자는 우리가 노르웨이로부터 배워야 할 점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실력이 좋지만, 인성은 낙제인 스포츠 스타를 한국 사회도 더는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스포츠 기술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선에서 끝나면 안 된다. 사실 지식과 기술은 조금 늦게 배워도 상관없다. 어린이에게 가장 중요한 교육은 사회성을 키워 주는 것이다. 많은 어린이가 스포츠를 통해 규범을 배우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인성을 갖추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성숙한 사람으로 가득 채워질 때 대한민국의 스포츠는 진정으로 강해질 것이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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