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격 기계' 이정후(24 키움·히어로즈)는 지난 주말 롯데 자이언츠와 정규시즌 개막 2연전에서 타율 4할(10타수 4안타)을 기록했다. 지난해 리그 타격왕답게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장타율(0.500)과 출루율(0.400)을 합한 OPS도 0.900로 수준급이었다.
눈길을 끄는 건 헛스윙이다. 이정후는 두 경기에서 총 16번의 스윙을 했는데 단 한 번도 배트가 헛돌지 않았다. 파울이 6번, 나머지는 모두 인플레이 타구로 연결됐다. 9타석 이상 소화한 리그 32명의 타자 중 헛스윙이 '0'인 타자는 이정후를 비롯해 정은원(한화 이글스) 한유섬(SSG 랜더스) 조용호(KT 위즈)까지 4명. 이 중 삼진까지 없는 선수는 이정후와 한유섬뿐이다. 시즌 초반이라 표본이 많지 않지만, 이정후의 헛스윙 비율만큼은 단연 리그 최정상급이다.
이정후는 3일 롯데전이 끝난 뒤 "(헛스윙이 적으니) 좋은 타구가 나오는 것 같다"며 "스윙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보다 스윙할 때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려고 한다. 최대한 파울을 치지 않으려고 연습 때부터 노력하고 있다"고 달라진 부분을 설명했다.
이정후는 데뷔 때부터 헛스윙과 거리가 멀었다. 프로 첫 시즌이던 2017년 헛스윙 비율이 4.4%(리그 평균 8.6%)로 규정타석을 채운 46명의 타자 중 44위였다. 이듬해에는 이 수치를 3.6%(리그 평균 9.8%)까지 낮췄다. 2019년과 2020년에도 3%대 헛스윙 비율을 유지했다.
지난해 이정후는 개인 첫 2%대 헛스윙 비율(2.9%)을 기록하며 업그레이드에 성공했다. 리그에서 그보다 헛스윙 비율이 낮은 건 이용규(키움·2.8%)와 김선빈(KIA 타이거즈·2.4%)밖에 없었다. 관심이 쏠린 올 시즌에는 타석에서의 집중력이 더 향상된 모습이다.
헛스윙 비율이 낮다고 무조건 좋은 타자가 아니다. 타석에서 스트라이크 3개를 지켜보면 헛스윙 비율은 '0'이지만 결과는 3구 삼진이다. 지난해 김상수(삼성 라이온즈)의 헛스윙 비율은 4.5%로 낮았지만, 그의 타율이 0.235로 떨어졌다. 낮은 헛스윙 비율을 높은 타율로 연결하는 건 타자의 역량이다.
이정후는 이 부분에서 '정석'에 가깝다. 강병식 키움 타격코치는 이정후에 대해 "타석에서 대처 능력이 좋다. 스트라이크존 안에 들어오는 공을 배트에 맞히는 능력이 뛰어나다. 또 나쁜 공에는 배트가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정후는 '반성의 아이콘'이다. 매년 리그 최상위 성적을 거두지만 만족하지 않는다. 2019년 한국시리즈에선 두산 베어스에 4전 전패를 당한 뒤 "나와 팀 모두 이 감정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울분을 삼켰다. 시리즈 타율 0.412로 맹타를 휘둘렀지만 "중요할 때 제대로 된 타격을 하지 못했다"고 반성하기도 했다. 2020년 6월에는 조아제약 월간 MVP(최우수선수)로 선정된 뒤 "타점을 더 해야 하고 볼넷도 더 골라내야 한다. 도루도 더 해야 한다. 할 게 많다"며 스스로를 독려했다.
그 결과 끊임없이 성장한다. 홈런이 부족하다고 느낀 2020년에는 발사각(15.8도→17.9도)을 높였고, 타구 속도(133.1㎞/h→137.6㎞/h)를 증가시켜 데뷔 첫 두 자릿수 홈런을 터트렸다. 지난해에는 타격왕 타이틀을 손에 넣으며 개인 한 시즌 최고 출루율 기록(0.438)도 갈아치웠다. 리그 정상급 교타자이자 팀 선배인 이용규는 지난해 "이정후가 가장 뛰어난 점은 타석에서의 집중력과 정확성"이라며 "올해보다 내년 내후년이 더 기대되는, 앞으로 KBO리그에서 누구도 남기지 못했던 기록을 써나갈 선수"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정후를 향한 홍원기 키움 감독의 신뢰는 대단하다. 지난해 10월 이정후가 18타수 무안타로 부진할 때도 "타격 파트에서 따로 주문하는 건 없다"고 말할 정도다. 간혹 슬럼프 조짐을 보이더라도 "알아서 하는 선수"라는 얘기가 가장 먼저 나온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발전하는 이정후의 성실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올 시즌에도 마찬가지다. 약점이 거의 없지만 '헛스윙 비율을 낮추겠다'는 확실한 목표를 갖고 시즌 개막을 맞이했다. 첫 두 경기에선 완벽함에 가까웠다.